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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동북아 철도네트워크 수립과 운영에 함께 참가해 공동번영을 이룩하자는 취지였다. 이는 남북 철도연결을 유라시아로 확대하려는 구상인데, 1945년 이전 일제가 동북아에서 구축한 철도공동체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다시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내력과 현실을 파악하고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하다. 일단 한국이 외국과 연결되는 첫 관문인 국제철교와 국경철도를 살펴보겠다.

일제강점기 압록강에는 4개의 국제철교가 있었다. 신의주-안동(지금 丹東)에 2개, 청수-상하구(수풍발전소 근처) 만포-집안(고구려 수도)에 각 1개.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가르는 압록강(803㎞)은 국제하천으로서, 통상 7월초부터 8월말까지 홍수가 자주 발생해 유속이 빠르고 목재나 가옥이 떠내려 오는데다, 12월초부터 3월말까지는 결빙으로 선박이 항행할 수 없었다. 한해 절반 가량 선박운행이 불가능한 압록강은 한만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교통에도 일대 장애였다. 대륙에 세력을 뻗치고자 골몰한 일제는 한국 강점 직후 신의주-안동에 제1철교(압록강대철교)를 가설해 직통열차 운행을 개시했다(1911.11.2.). 청일ㆍ러일전쟁 때 한국을 유린하고 만주를 공략한 군벌 데라우치 마사타케(조선총독)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원로)는 감격의 시를 주고받았다.

압록강 하구에서 45㎞ 상류에 위치한 제1철교는 전장 944.2m 단선철도로 좌우에 2.6m 인도를 설치했다. 12개 교형(橋桁)은 궁상형(弓狀形)인데, 한국 쪽에서 9번째 연(連)을 45°로 회전하여 개폐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주재 영국ㆍ미국 공사가 만주의 문호개방과 기회균등을 내세우며 선박통행 자유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제1철교는 하루 오전 오후 한 차례씩 회전 개폐했는데, 일제가 만주국을 세워 세력을 독점한 직후 안전을 명목으로 이를 중지했다(1934.11).

원래 제1철교는 경의선을 부설한 일본군 임시군용철도감부가 가설을 시작했다. 감부는 1905년 2월 조사측량, 7월 설계도 예산서 확정, 10월 참모본부 재가 획득 등을 추진했다. 이후 한국통감부가 1909년 6월 압록강출장소, 조선총독부가 1910년 10월 압록강건설사무소를 설치해 시공했다. 교각은 유빙과 홍수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들고, 기초는 철근 콘크리트 통을 깊은 물밑 땅 속에 박아 다졌다(潛函工法). 1909년 8월 착공, 1911년 10월 말 준공된 공사에는 연인원 51만 명의 한국인과 중국인이 동원되고, 175만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중일 반씩 부담). 미국이 교량설계와 판형제작을 맡았는데, 인천까지는 선박으로, 인천에서 현장까지는 철도로 수송했다. 제1철교는 전장 공법 기능 등에서 동양 최초를 기록한 국제명물이었지만 단선이어서 수송에 지장을 초래했다.

일제는 제1철교 완공과 더불어 안봉선(안동-봉천)을 표준궤로 개축하고 신의주 안동 역사(驛舍)를 신축하여 한만철도를 연결했다. 일제와 중국은 1911년 2월 ‘국경열차 직통운행에 관한 일청협약’을 체결했다.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압록강철교의 중심을 획정하여 양국의 국경으로 삼고, 중심의 서편을 중국국경, 동편을 일본국경으로 한다. 열차가 국경을 통과한 직후 기관차를 변경한다. 경의선 기관차는 안동역 서쪽으로 운행할 수 없으며, 안봉선 기관차는 신의주역 동쪽으로 운행할 수 없다. 두 철도의 열차가 안동역에 도착하면 양국 세관관리가 공동으로 화물 수하물 등을 검사하고 각국 세관세칙에 따라 처리한다. 양국 국경을 통과하는 열차는 군대를 수송할 수 없다. 조약에 따라 주둔이 허락된 군대는 이 규정에 저촉되지 않지만, 국경을 왕래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통고해야 한다.

제1철교는 6ㆍ25전쟁 중인 1950년 11월 8일 연합군 폭격으로 신의주 쪽이 반파됐다. 북한과 중국은 제1철교를 아직도 복구하지 않고 연합군과 함께 싸운 증거로 선전하고 있다. 안동 쪽에서는 관광객이 철교 국경까지 가 볼 수도 있다. 현재 신의주-안동 국제열차는 1943년에 준공한 제2철교(中朝友誼橋)를 통해 왕래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살펴보겠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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