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을 때도 지역 차별”…법원마다 다른 개인회생 변제기간

입력
2018.09.22 10:00

집안 사정으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2015년 초부터 개인회생 절차를 밟은 울산의 주부 A(41)씨는 1월 “법이 개정돼 변제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었다”는 법원 직원의 전화를 받고 변제기간 단축을 신청했다. 그러나 울산지법은 “지침이 없다”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더니, 지난달 A씨에게 “기존 개인회생 신청자에게는 소급 계획이 없다, 단축 신청을 철회하라”고 통보했다. A씨는 “서울에서는 지침까지 만들어 변제기간을 줄여주는데, 왜 지방 사람들만 2년 더 빚을 갚아야 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을 갚으려다 원금보다 이자가 더 커진 부산 거주 직장인 고모(41)씨는 2015년 3월 개인회생을 시작했다. 5년 동안 매월 400만원 가량 월급이 들어오면 300만원 이상 빚을 갚는 조건이었다. 3년 넘게 빚을 갚아 온 고씨는 올해 초 서울회생법원이 기존 개인회생 신청자들의 변제기간을 줄여준 것을 보고 부산지법에 문의했지만 “지침이 없어 어렵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고씨는 “서울만 되고 지방은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되냐, 차라리 전부 안 된다고 하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부터 개인회생 변제기간을 최대 5년에서 최대 3년으로 단축한 채무자회생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기존 개인회생 신청자에 대한 소급 적용을 놓고 지역 법원마다 판단이 달라 논란이다. 개인회생은 일정 기간 매월 정해진 금액을 갚으면 채무를 면책 해주는 제도인데, 중도 포기자가 많아 국회는 지난해 11월 변제기간을 단축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에 명확한 소급 규정이 없고, 대법원 또한 통일된 기준을 세우지 않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과 춘천지법 강릉지원만 기존 신청자에 대한 기간 단축을 허용하고 있고, 대전지법ㆍ대구법원은 조건부 허용, 기타 지방법원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당장 법 개정 이전 개인회생 신청자들은 ‘지역 차별’이라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2004년 8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을 당시에는 대법원이 지침을 만들어 일괄적으로 소급 적용했다”며 “지역에 따라 빚을 갚는 기간이 2년이나 달라질 이유가 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및 시민단체들이 나서 “개인회생 변제기간을 전국 법원이 통일된 기준에 따라 처리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지만, 법원행정처는 “각 재판부가 고려할 판단사항이라 예규로 통일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대답만 내놓고 있다.

기존 개인회생 신청자들의 변제기간 단축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가 업무량 증가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공무원노조는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이 1월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 지침을 사전 준비 없이 밀어붙였다”며 6월 다면평가 결과에서 부적합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법원노조 관계자는 “서울회생법원에서만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일선 직원들에게 채무자ㆍ채권자 양측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대법원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전국적으로 통일된 지침을 내놓았다면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고씨를 비롯한 기존 개인회생 신청자 30여명은 각 지방법원에 변제기간 단축 신청안을 제출했다. 회생변호사회 교육이사인 조성곤 변호사는 “법원이 변제기간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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