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춘은 싸움 잘하는 동네 형… 자유롭고 따뜻한 리더로 해석해"

입력
2018.09.23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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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시성' 조인성 

영화 ‘안시성’으로 1년 9개월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조인성은 “배성우 박병은 같은 좋은 동료들과 연기한 덕분에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영화 ‘안시성’으로 1년 9개월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조인성은 “배성우 박병은 같은 좋은 동료들과 연기한 덕분에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오랜만에 만난 배우 조인성(37)은 견고한 성(城) 같은 배우가 돼 있었다. 말과 행동엔 무게가 실렸고, 살가운 ‘아재 감성’으로 중후함을 더했다. 시간과 함께 무르익으며 넓어지고 유연해진 듯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그는 성처럼 너르게 모두를 감싸 안는 리더십을 보여 준다. 주인공이어서가 아닌, 카메라 밖 관계 맺음에서 비롯된 리더십이다. 조인성은 “내가 동료들을 신뢰했듯 그들도 나를 인정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스며든다. 군사 5,000명을 이끌고 당나라 20만 대군에 맞서 싸운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조인성을 만나 따뜻한 카리스마로 해석됐다. 북방의 매서운 바람을 단 칼에 베어 내는 대신 온기로 녹인다. 시대가 원하는 리더를 조인성에게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볼거리도 책임진다. 1,400년 전 재래식 전투가 마치 게임 속 한 장면 같은 미래적 영상미로 구현됐다. 세련된 젊은 리더에게 맞춤이다. 제작진은 총길이 180m에 이르는 안시성 세트를 지었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토산 전투 장면도 고증으로 재현했다.

영화 ‘더 킹’(2017) 이후 1년 9개월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조인성에게 ‘안시성’과 함께한 치열한 나날을 들었다.

양만춘은 야전 사령관 같은 거친 야성미와 따뜻한 카리스마를 모두 지닌 인물이다. NEW 제공
양만춘은 야전 사령관 같은 거친 야성미와 따뜻한 카리스마를 모두 지닌 인물이다. NEW 제공

 -영화 ‘쌍화점’(2008) 이후 사극은 10년 만이다. 

“내가 좀 현대적이고 스마트한 외모이지 않나(웃음). 사극을 피하진 않았지만 제안이 많이 오지도 않았다. ‘비열한 거리’(2006) 찍을 때도 조폭에 안 어울리는 외모라고들 했다. 그런 편견들을 하나씩 돌파해 왔다.”

 -전쟁 영웅 양만춘이 새롭게 창조됐다. 

“처음엔 나 스스로도 양만춘과 매칭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안시성 성주라는 타이틀을 걷어내 보기로 했다. 그냥 동네에서 싸움 잘하는 형이더라. 당나라는 전국구, 안시성은 변방 작은 동네라고 치면, 전국구 큰형이 이름 없는 동네 패거리한테 얻어맞고 간 거다. 얼마나 창피하겠나. 그렇게 당하면 또 무지하게 아프다(웃음).”

 -안시성 전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상의 여지가 넓은 게 캐릭터 구축에 도움이 됐나. 

“양만춘과 안시성 전투를 모르는 분들도 있더라. 영웅이나 위인으로 사람들에게 굳어진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다. 내 생각을 뭐든 투영할 수 있었다. 고구려 최고 권력자 연개소문에게도 굽히지 않는 호기를 갖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야망은 전혀 없는, 아주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김광식) 감독님도 젊은 감성을 원했다.”

 -양만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나. 

“최민식 선배님이 ‘명량’(2014)을 찍을 때 ‘한 시간만 과거로 돌아가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더라. 심지어 선배님도 그렇게 절박하셨는데, 나는 오죽했겠나. 내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만춘만의 리더십을 정의한다면.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 양만춘은 고구려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성주로서 성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전투를 한 거다. 그게 결국 고구려를 지킨 힘이 된 거고.”

 -전투 장면에선 고생이 훤히 보이더라. 

“자연 환경과의 싸움이었다. 강원 고성군 야외 세트장에서 주로 찍었는데 거센 바람에 눈을 못 뜰 지경이었다. 여름엔 아프리카보다 덥고 겨울엔 남극보다 추웠다. 갑옷이 무거워서 체력이 방전되곤 했다. 감독님이 어느 날 갑옷을 들어보더니 깜짝 놀라더라. 여태 그 무게도 모르고 우리에게 연기를 시킨 건가, 배신감이 들더라니까(웃음).”

 -그 갑옷을 입고 액션 연기를 했는데. 

“도경수가 인근에서 촬영하다가 한번 놀러 온 적이 있다. ‘여긴 진짜 전쟁터 같다’며 혀를 내두르더라. 힘들게 찍었는데 어떻게 영화에 담겼을지 나 역시 궁금했다. 컴퓨터그래픽(CG) 팀이 고생 많이 했다.”

신작 계획을 묻자 조인성은 “요즘 역대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당분간 푹 쉬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신작 계획을 묻자 조인성은 “요즘 역대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당분간 푹 쉬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제작비가 200억원이다. 배우에겐 이 숫자가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서 영광스럽기도 할 것 같은데. 

“정말 그렇다. 양가적 감정이 든다. 특히 요즘엔 한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위험 부담이 크니까. 이런 행운은 아마도 내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어려운 과제를 해내면 성장하지 않나. 

“‘안시성’에서 쌓인 내공은 다음 작품을 할 때 느껴질 것 같다. 이전 작품에서 얻은 지혜와 경험을 ‘안시성’에서 요긴하게 쓴 것처럼 말이다. 대형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마음같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 좀 담대해졌다. 조급함도 사라졌고. ‘원래 그렇지’ 하면서 여유를 갖게 됐다.”

 -1998년 모델로 데뷔해 벌써 20년이다. 

“숫자에 특별히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다. 다시 태어나서 다시 배우로 산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잘 될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데뷔할 때 고등학생이었다. 어른의 세계에서 마음을 많이 다쳤을 것 같은데. 

“글쎄… 요즘 활동하는 10대 친구들이 더 힘들 것 같다. 학교를 건너 뛰고 사회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학교생활을 통해 꼭 사회성을 길렀으면 좋겠다. 마음도 잘 챙겨야 한다.”

 -어린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넘어지더라도 빨리 일어서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앞으로도 계속 넘어질 거다. 처음 살아 보는 인생이니까.”

 -40대가 곧 다가오는데. 

“(웃음)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야지. 어제가 부족했다면 좀더 나은 오늘을 만들면 되고. 양만춘이 안시성을 묵묵히 지킨 것처럼 말이다.”

 -나이 들어도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몸을) 잘 씻고, (돈을) 잘 쓰기. 후배들이 묻기 전에 먼저 말하지 않기. 술을 세 번 이상 권하지 않기.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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