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TALK] “상무님은 외근 중”…식품업계 임원들이 명절에 바쁜 이유

입력
2018.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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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체들에게 명절은 놓쳐선 안될 ‘절호의 기회’입니다. 선물세트는 물론 일반 상품도 평소보다 2배 가까이는 판매해야 한다는 일종의 ‘불문율’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판촉여사원들입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매대 앞에 서서 특정 브랜드 제품을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주며 구매를 권하는 여성 직원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이들 판촉여사원은 마트나 백화점에서 일하지만 상당수가 특정 식품업체 소속입니다.

업계에서 흔히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이들은 식품 브랜드의 명절 매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여사님들이 얼마나 고객들의 눈길과 발걸음을 잘 붙잡느냐에 따라 해당 브랜드 제품의 판매 실적이 좌우되기 때문이죠. 평소 잘 몰랐던 브랜드라도 여사님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관심이 가고 제품을 집어 들게 되는 고객이 적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명절 즈음에 식품업체들은 여사님들 ‘특별 관리’에 들어갑니다. 경영진과 임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여사님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거죠. 대개 명절을 2, 3주 앞둔 시기에 먼저 임원들이 모여 거주지와 업무 동선에 맞춰 ‘담당 구역’을 나눕니다. 식품업체 C사의 한 상무는 “명절 때마다 한 임원이 최소한 3일 정도는 현장에 나가 하루에 적어도 3~5개 매장을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매장에 도착한 임원들은 매대로 찾아가서 여사님들을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고 종종 영화상품권이나 기프트카드, 금일봉 같은 선물도 전달하며 노고를 격려합니다. 그러면서 적절한 칭찬과 응원 문구 하나쯤은 필수로 남겨야죠.

이렇게 본사에서 임원이 한번 출동하고 나면 매장 분위기도 살아납니다. 마트나 백화점 현장에선 한꺼번에 수많은 브랜드가 치열하게 판촉 활동을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브랜드 소속의 여사님들 사이에서 묘한 경쟁심리가 나타나기도 한다는데요. 임원의 선물과 격려를 받은 여사님들은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더 판매하기 위해 애쓰게 될 겁니다. 다른 여사님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면 살짝 으쓱해지기도 한다지요.

명절뿐만이 아닙니다. 식품업체 D사의 한 차장은 “명절이 없는 5, 6월도 여사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한 시기”라고 귀띔했습니다. 겨우내 먹었던 김장김치가 떨어져 가는데 더위나 장마 등으로 배추 가격은 올라가 김치를 담그기 부담스러운 시기죠. 때문에 이 즈음이면 대개 김치 매출이 올라갑니다. 가정의 달 연휴와 여름휴가가 시작돼 여행족의 김치 구매가 느는 것도 매출 증가에 한몫 하겠죠. 그래서 이때도 식품업체 임원들은 여사님 관리에 출동하곤 한답니다.

식품업체 입장에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보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여사님들이 소비자와 더 가까운 접점입니다. 여사님들의 말투나 표정에 따라 회사와 브랜드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수 있죠. 그래서 명절처럼 바쁜 시기가 지나면 이들에게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교육 기회도 제공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도 마련합니다. 매출 증가에 영향력이 남달리 큰 여사님에 대해선 사내에 성공 사례로 공유하기도 하고, 전략 판매 지역으로 ‘급파’하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여사님은 업체들끼리 경쟁적으로 ‘스카우트’도 한다는데요. 올 명절 마트에 들릴 계획이 있다면 여사님들의 활약상을 한번 눈여겨보면 어떨까요.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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