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서 돌아온 아프간 도스툼 부통령… 잔혹한 군벌 정치인의 재등장

입력
2018.09.21 19:00
19면
아프가니스탄의 대표적인 군벌 정치인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부통령이 14개월 간의 터키 망명 생활을 마치고 지난 7월22일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자, 지지자들이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수 분 만에 이 곳에서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 테러 공격이 발생해 환영객 중 14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방탄차량에 탑승한 도스툼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갔다. 카불=EPA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대표적인 군벌 정치인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부통령이 14개월 간의 터키 망명 생활을 마치고 지난 7월22일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자, 지지자들이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수 분 만에 이 곳에서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 테러 공격이 발생해 환영객 중 14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방탄차량에 탑승한 도스툼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갔다. 카불=EPA 연합뉴스

지난 5일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아프가니스탄발(發)로 의미심장한 영상과 사진이 올라 왔다. 아프간 부통령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 자신의 고향인 북부 조우잔주(州)에서 이 지역 이슬람국가(IS) 부사령관 무프티 네마뚤라와 화기애애하게 포옹을 하는 장면이었다. 조우잔 지방에 IS 세력이 등장한 건 2016년 10월쯤이다. 과거 탈레반에 몸담았던 병사 600여명이 갑자기 IS의 검은 깃발을 들고 ‘우리는 IS’라고 자칭한 것이다. 아프간 분쟁을 가장 정교하게 분석해 온 카불 소재 싱크탱크 ‘아프간 분석 네트워크(AAN)’는 조우잔 지역 IS세력의 경우,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 지역의 ‘아프간 IS’ 세력과는 연계가 없다고 진단했다. AAN이 조우잔 IS를 ‘자칭 IS’라고 표기하는 이유다. 이들 ‘자칭 IS’ 세력은 지난 7월 탈레반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패배했다. 일각에선 살아남은 ‘자칭 IS’ 전사들의 후퇴를 도운 게 바로 아프간 정부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중앙아시아 주변의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댄 아프간 북부의 인구는 우즈베크계와 타지크계가 주를 이룬다(두 종족은 아프간 전체 인구의 각각 9%와 27%를 차지한다). 아프간에서 주류 파슈툰계(42%)와 나머지 종족들 사이의 갈등은 때론 증폭되고, 때론 진정되면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데 완전히 소멸된 적은 없다. 또 종족과 지역에 기반한 이들 정치세력은 거의 무장정당, 이른바 ‘탄짐(tanzimㆍ소련 점령 시절 무자히딘 세력의 조직화 방식에서 유래된 용어)으로서 유지돼 왔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간 점령을 끝내고 철수한 뒤, 얼마 후 시작된 1990년대 아프간 내전은 이들 군벌세력 간의 싸움이었다. 당시 수도 카불은 쑥대밭이 됐다. 1994년부터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시작된 파슈툰족 중심의 탈레반 운동이 2년 만에 카불을 장악한 건 카불의 무정부 상태와 치안 공백에 따른 반사 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 그 시기 북부 우즈베크계를 대표하던 군벌이 바로 지금의 부통령 도스툼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시아파 무장정당 소속 병사가 18일 수도 카불의 보초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시아파 무장정당 소속 병사가 18일 수도 카불의 보초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1973년 민병대로 군생활을 시작한 도스툼은 1980년대 내내 친소 정부의 군대에 몸을 담았다. 그러다 반(反)소련 무자히딘 진영으로 노선을 갈아탄 건 그의 종파주의적 마인드와 기회주의적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1989년부터 북부 아프간 제 7군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그는 1992년 친소정권 나지불라 대통령이 제 7군 부사령관을 파슈툰족 출신으로 임명하자 반발했다. 이를 계기로 ‘준비쉬 밀리 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국 이슬람 운동’이라는 뜻)’을 창당하고, 북부 지역에 군벌 왕국을 키웠다. 우즈베크계 인구가 주류인 조우잔 지방의 ‘자칭 IS’ 세력과 도스툼의 포옹은 이런 맥락에서 많은 의문을 남겼다.

도스툼은 아프간 군벌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11월 아흐마드 이슈치 전 조우잔 주지사가 “도스툼에 납치, 고문, 강간을 당했다”고 폭로해 처벌 여론이 들끓자, 도스툼은 이듬해 4월 터키로 ‘자가 망명’을 떠났다. 도스툼의 잔인함, 안하무인 성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14개월간의 터키 망명 생활을 마친 그가 돌아온 지난 7월 22일, 카불 공항에선 IS의 자살 폭탄테러로 환영 인파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방탄 차량에 타고 있던 그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아프간 북부 우즈베크계 대표 

 민병대 활동하다 사령관 

 납치ㆍ고문 알려지자 망명 

 

 #지난 7월 귀국 공항서 테러 

 방탄 차량 탓 화는 면해 

 ‘대동맹’이라는 정치연대 참여 

이런 인물이 부통령이라는 사실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이끄는 현 아프간 정부가 도스툼을 포함, 여러 정치세력을 ‘국가 통합’이라는 명분아래 무리하게 끌어 안았음을 보여준다. 2014년 대선 당시 가니 대통령 후보는 과거 자신이 “알려진 살인마”라고 비난했던 도스툼을 부통령 파트너로 골랐다. 도스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족적, 지역적 지지기반을 무시할 수 없어 택한 고육책이었다. 이에 힘입어 출범한 가니 정부는 ‘민족단합정부’를 표방했고, 도스툼은 부통령이 됐다. 대선에서 패한 압둘라 압둘라 후보도 총리 격인 ‘행정 수반’직에 앉았다. 또, 종교 정당인 ‘자미아떼 이슬라미(JI)’ 총재인 살라후딘 랍바니는 외교부 장관이 됐는데, 그는 JI의 대부격인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랍바니 전 대통령은 2011년 9월 평화 전망을 논의하자며 접근한 탈레반 대원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암살됐다.

이런 ‘단합정부’와 아프간 정치권에 다시 분파주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난 7월26일 ‘대동맹(Grand Alliance)’이라는 이름의 정치연대체가 출범했는데, 이는 가니 대통령의 내년 4월 대선 재출마를 막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여기엔 부통령 도스툼, 외교장관 살라후딘도 동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몽골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무장정당 ‘히즈비 와흐닷’ 군벌로, 1980년대 무자히딘 출신인 모하마드 모하키크도 참여 중이다. 사실 이들 군벌 정당과 정치인들은 도스툼의 터키 자가망명 시절, 그의 터키 저택에 모여 연대체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대동맹 결성의 사전 행보였던 셈이다.

18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잘랄라바드에서 보안군 대원들이 정부청사와 군 시설 공격 혐의로 체포한 용의자들을 호송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체포된 8명 가운데 5명은 이슬람국가(IS), 다른 3명은 탈레반에 소속된 이들”이라고 전했다. 잘랄라바드=EPA 연합뉴스
18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잘랄라바드에서 보안군 대원들이 정부청사와 군 시설 공격 혐의로 체포한 용의자들을 호송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체포된 8명 가운데 5명은 이슬람국가(IS), 다른 3명은 탈레반에 소속된 이들”이라고 전했다. 잘랄라바드=EPA 연합뉴스

단행본 ‘탈레반’의 저자인 파키스탄 기자 아흐메드 라시드는 지난해 7월 터키 공영방송 TRT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정치상황에 대해 “가니를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라면서 아프간이 대탈레반 전쟁 상황 악화는 물론, 유례없는 정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대동맹 지지자들은 지난 15일부터 동부 낭가르하르, 북부 발크, 남부 칸다하르, 서부 헤랏 등의 선관위 사무소를 폐쇄하며 ‘선거 연기’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총선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나온 이들의 실력 행사는 “공정 선거 방안을 마련하라”는 그럴 듯한 구호에도 불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동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AAN 국장인 토마스 루티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당들이 민주적 제도 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민주적인지 되돌아 보고 무엇보다 그들의 사병조직을 비무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탈레반의 카불 입성과 함께 외곽으로 밀려나 ‘북부 동맹’을 결성하고, 탈레반과의 또 다른 전선을 구축했던 이들이 다시 주류 정치권에 복귀한 건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따른 효과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은 탈레반 척결 작전에 북부 동맹을 동맹세력으로 끌어 들였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도스툼에 대해 “아프간 내 미국의 심복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이후 17년, 미국의 최장기 전쟁터가 되고 있는 아프간은 정치권의 지리멸렬 탓에 그나마 도입했던 선거 민주주의마저 ‘작동 불능 위험’에 빠져 있다. 그 틈새를 비집고 탈레반은 영토를 넓혀갈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대기 중인 정부’로 떠올랐다는 게 아프간 정세에 능통한 전문가의 일침이다. 루티그 국장은 “탈레반은 선거에 호의적이고 다양한 정치 세력도 받아들이겠다고 하지만, 1인 1투표 정당기반 정치가 아니라 (이슬람 지도자 회의 체계인) 슈라(Shura) 시스템인 게 문제”라고 말했다.

북부 지역에서 탈레반의 확장세는 두드러진다. 지난해 9월18일 발행된 AAN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이 전사 모집에 가장 중점을 두는 지역은 북부 파르얍 지방이다. 탈레반은 이 지역 우즈베크계 마드라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병사 모집을 해 왔다. 또 애초 도스툼 편이었던 지역 사령관들도 탈레반으로 대거 넘어 갔다. 2016~2017년 파르얍 지역에서 민간인 사상을 낳은 건 대부분 ‘친정부 무장 단체’ 때문이라는 게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의 지적이다. 유엔은 또 파르얍 지방이 납치 사건, 그것도 친정부 민병대에 의한 납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친정부 무장 단체’에 부통령 도스툼의 사병들이 포함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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