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자 실패해서’ 추석이 암울한 존버족들

입력
2018.09.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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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2018-09-0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2018-09-04(한국일보)

“아버지 돈까지 몽땅 투자했는데 지금 수익률이 마이너스 76%예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암호화폐)에 3,000여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김동규(32)씨는 추석 연휴가 두렵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한참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자 본인의 돈에다가 아버지까지 설득해 목돈을 투자했는데 이제 김씨 수중에 남은 돈이라곤 900만원 정도. ‘존버(언젠가 가격이 오를 것이라 믿고 버티는 행위)’ 중인 김씨는 “지난 설까지만 해도 수익을 얻던 때라 ‘가상화폐 투자 좀 해보시라’며 친척에게 권하곤 했는데 추석에는 아버지를 포함해 가족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추석 인사가 있지만 연초 가상화폐에 투자해 큰 돈을 잃은 ‘존버족(族)’에게 이번 추석은 그저 우울한 연휴일 뿐이다. 지난 설 이후 가격이 곤두박질 치면서 고향을 찾는 주머니마저 텅 빈 데다, 명절에 모인 가족들이 한 마디씩 잔소리를 던질까 봐 아예 고향을 가지 않는 이들도 있다.

‘9개월 존버족’ 직장인 한모(27)씨는 추석이 다가오면서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올 1월 가상화폐에 200만원을 투자했지만 현재 한씨 전자지갑에는 17만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씨는 “올 초 가족들이 ‘가상화폐 투자 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호기심에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추석에 가족들이 혹시나 가상화폐에 대해서 물어볼까 무섭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모인 오픈카톡(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익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 대화방에도 아우성이 이어진다. 지난 20일에는 600여명이 모인 한 코인 오픈카톡방에는 “추석에 부모님 용돈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코인 투자로 인한 손실이 너무 커 우울하다”, “우울해질까 봐 이번 추석 때는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대화가 오고 갔다. 직장인 이재은(28)씨는 “가상화폐는 주식과 달리 24시간 거래할 수 있어 지난 명절 내내 가상화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는데 올 추석에는 아예 언급 자체가 확 줄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올 1월만 해도 가상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은 같은 달 6일 2,598만원(빗썸 거래소 기준)의 최고가를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빗썸이 지난 2월 16일 성인 701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금 대신 세뱃돈으로 받고 싶은 선물로 가상화폐를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81.6%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다 1월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져 현재는 727만원 선(20일 오전10시 기준)에 시세가 형성돼 연초에 비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명절 동안에는 자녀와 부모가 갈등하는 일이 잦은데 가상화폐 이슈 때문에 명절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보다 명절 동안 만이라도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고, 터놓고 대화를 한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라 조언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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