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병 걸린 진보가 '애국' '충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입력
2018.09.21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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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세대 강의 당시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로 돌풍을 일으킨 그는 한국은 물론,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출판, 강연을 진행했다. 와이즈베리 제공
2012년 연세대 강의 당시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로 돌풍을 일으킨 그는 한국은 물론,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출판, 강연을 진행했다. 와이즈베리 제공

“구성적 애착을 느끼지 못하는 개인을 상상하는 것은 이상적으로 자유롭고 이성적인 행위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완전히 결여된 개인, 도덕적 깊이가 완전히 결여된 개인을 상상하는 것이다.”

가족애, 애사심, 애국애족 같은 단어 따위야 화끈하게 비웃어줘야 쿨하고 자유로운 개인주의자로 인증받는 이 시대에, 그런 ‘쿨한 개인주의’가 실은 ‘인격과 도덕적 깊이의 결여’일 수도 있다고 ‘꼰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이 사람은 누굴까.

한국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다. 샌델은 진보가 ‘쿨 놀음’에 빠져 이런 열정들을 내다버리는 바람에 미국은 “장벽을 세우고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차이를 공고화하며, 우리 문화를 되찾고 우리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정치를 약속한 사람들에게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그러니까 22년 전인 1996년에 이미 경고했다. “20년이 지나 그 공포는 현실이 됐다.”

확실히 그렇다. 오늘날 한국만 봐도 정치적 열정이 넘치는 이들은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다. 그들이 거리의 투사로 나서는 동안, 진보 쪽은 ‘민족’ ‘통일’ 같은 촌스러운 말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너희도 신자유주의 정권이긴 매한가지”라고 화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에 시급한 것은, 어설픈 세계시민 흉내보다 오히려 가정, 회사, 사회, 민족, 국가에 대한 소속감에 기반한 정치적 열정의 회복 아닐까. ‘애국’과 ‘충성’을,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서 구출해야 하지 않을까. 서구식 개인주의, 자유주의 비판에 기반한 샌델의 이런 문제제기는 단지 ‘정의란 무엇인가’로만 환원될 수 없는, 세심하게 독해돼야 할 주장이다. 서구와 달리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동양에선 더더욱.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샌델을 세심하게 읽어내는 데 좋다. 중국과 서구 철학자 10명이 유교, 도교 등 각자의 ‘동양학적(?) 입장’에 따라 샌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샌델이 응답한 기록이어서다.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마이클 샌델 등 지음ㆍ김선욱 등 옮김 

 와이즈베리 발행ㆍ464쪽ㆍ1만7,000원 

기자 출신 중국 전문가 에반 오스노스가 서문에 써둔 묘한 문장이 힌트다. 중국이 ‘정의’를 논하는 미국 학자를 반길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에서 책 내고, 강연하고,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샌델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유용하고 도전적이지만 체제전복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어휘, 그리고 불평등과 부패, 공정성에 대해 정치적으로 들리지 않고도 토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그것은 정치적 정당성과 권위에 직접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으면서 도덕성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길이었다.”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공동체를 앞세우는 샌델의 접근법이 발휘하는 마력이다. 샌델은 진보의 정치적 접근법에 대한 하나의 힌트다. 비유하자면 ‘태극기 부대에게서 태극기 구출하기’다. ‘정의’를 외친 미국 유명대학 교수로만 소비되고 말기엔, 샌델이 아까운 지점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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