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원칙에 앞서 국민을 위로할 수 있어야”

입력
2018.09.19 17:43
수정
2018.09.19 19: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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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병철 前 대구고검장, 서울경찰청서 이례적 강연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명의가 수술을 잘 하는 건 기본입니다. 이젠 수술 전 환자에게 ‘수술이 잘 될 거다’라는 희망을 주고 수술이 끝난 뒤엔 환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의사가 명의입니다. 경찰은 사회의 병을 고치는 의사들 아닙니까?”

소병철(50) 전 대구고검장이 19일 오전 서울경찰청에서 ‘변화하는 치안환경, 국민의 신뢰를 받는 법 집행’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가 경찰 대상으로, 그것도 서울경찰청 강단에 선 것은 이례적이다. 강연엔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해 경찰 간부 100여명이 참석했다.

소 전 고검장은 이날 “법 집행기관이 단지 법과 원칙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감성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확보되고 내부 고발이 용이해진 오늘날, 법 집행기관이 ‘국민들이 감성적이다’고 불평할 게 아니란 얘기다. 대신 마주하는 국민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성범죄 증거물 피해자 실명 관보’를 예로 들었다. 성범죄 사건 압수물을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며 관보에 피해자 이름 등을 적시한 것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가 “규정이 그렇다. 전자관보와 종이관보는 똑같아야 한다”고 해명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규정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규정 탓에 피해를 줬다. 개정하겠다”고 덧붙이며 피해자의 마음을 보듬는 게 오늘날 필요한 법 집행자의 자세란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법 집행자는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소 전 고검장은 “법 집행자가 성범죄, 금전 문제 등에서 깨끗하지 않으면 법 집행마저 신뢰를 잃게 된다”라며 “공직자는 수신제가(修身齊家)가 먼저다”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에서 소 전 고검장이 같은 내용의 강의를 했는데, 당시 반응이 좋아 서울경찰청 강연에 초청하게 됐다”라며 “이날도 참석자들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소 전 고검장은 “수사권 문제로 검찰과 갈등해 온 경찰이 전직 검찰 간부를 강사로 초빙한 개방성과 유연성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소 전 고검장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과 대전지검장, 대구고검장을 거쳐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뒤 2013년 12월 퇴임했다. 법무부장관ㆍ검찰청장 후보로 수 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현재는 법무연수원과 순천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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