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거와 블록체인

입력
2018.09.12 11:07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병존ㆍ대립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끊임없이 분출된다. 사회 갈등은 정당한 경쟁, 대화와 타협 등 순기능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갈등이 지속되는 경우 사회 분열과 국민적 혼란 등 많은 사회 문제를 양산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빨리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일례로 2013년 전북 전주시ㆍ완주군 통합 추진을 두고, 완주군 주민 사이의 통합 찬반 갈등은 지역 사회를 분열로 몰고 갔다. 21년간 3번의 통합 시도 때마다 지속된 찬반 대립은 통합 결정을 ‘주민투표’에 맡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완주 주민의 갈등과 반목은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앙금을 남겼다.

우리나라는 압축적 경제성장, 급속한 민주화,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지역ㆍ계층ㆍ성별ㆍ세대 간 갈등이 고조된 상태다.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회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 원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협상ㆍ중재ㆍ재판 등 여러 가지가 있고, ‘투표’ 역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 중 하나다. 특히 복잡한 사회 체계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오늘날에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인 ‘투표’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며, 대표자를 ‘선출’하여 주요 의사를 결정하게 할 때는 ‘투표’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그 동안 ‘투표’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관리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인지 우리 주변의 갈등 해결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인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온라인투표시스템(K-voting)’이 점차 바꿔가고 있다.

온라인투표는 기관ㆍ단체의 대표자 선출이나 다양한 의사결정을 PC, 휴대폰을 이용해 자율적으로 투ㆍ개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종이 투표가 갖는 시간ㆍ공간ㆍ비용의 제약을 벗어나게 해준다. 온라인투표 이용 건수는 처음 도입된 2013년에는 16건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는 1,360건으로 85배 증가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우수한 편리성에 신뢰성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활용 범위도 아파트 동대표선거 등 생활 주변 선거에서 정당의 당대표 및 공직선거 후보자 경선, 대학교 총장선거까지 공공성이 높은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T)에 기반을 두다 보니 해킹과 정보 위ㆍ변조에 대한 우려, 이를 예방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중앙선관위는 온라인투표시스템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투표시스템’ 개발을 추진 중이다. 개발된 시스템은 연내 중ㆍ소규모 단위 의견수렴, 설문조사 투표에 시범 적용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생활 주변 선거에 본격 도입할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투표시스템은 유권자 인증과 투ㆍ개표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뿐만 아니라 다수의 저장장치에 분산 저장된다. 후보자와 참관인도 투ㆍ개표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투ㆍ개표 정보가 해킹, 위ㆍ변조 등 보안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

사회 갈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 시민은 참관이 아닌 참여를 원한다. 단순히 정보의 공개를 넘어 공유를 통해 그 과정까지 참여하길 원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시민에게 정보의 공유와 참여를 보장해 줄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블록체인 외에도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선거와 융합하기 위한 중장기 정보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정책으로 실현되기까지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 스스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민주시민 사회로 나아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중앙선관위는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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