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끝말잇기와 두음 법칙

입력
2018.09.11 10:32

지난주에 한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다. 여섯 명의 고정 출연진이 외국인 팬들과 팀을 짜서 겨루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끝말잇기’가 대결 종목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외국인이 끝까지 살아남은 팀도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끝말잇기를 할 때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우리말에서 단어 첫머리에 올 수 없는 글자로 끝나는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 ‘은닉’이나 ‘개량’을 외치면 ‘닉’이나 ‘량’으로 시작하는 우리말 단어가 없기 때문에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이처럼 ‘닉’이나 ‘량’으로 시작하는 우리말 단어가 없는 이유는 바로 두음 법칙 때문이다.

두음 법칙은 우리말에서 ‘ㄴ’이나 ‘ㄹ’이 단어 첫머리에 오는 것을 꺼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따라 ‘니, 냐, 녀, 뇨, 뉴’ 등은 단어 첫머리에서 ‘이, 야, 여, 요, 유’로 바뀐다. ‘녀자’를 ‘여자’로, ‘뇨소’를 ‘요소’로 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ㄹ’은 좀 더 복잡하다. ‘리, 랴, 려, 료, 류’ 등은 ‘이, 야, 여, 요, 유’ 등으로 바뀌는 반면, ‘라, 로, 루, 르’ 등은 ‘나, 노, 누, 느’ 등으로 바뀐다. 그래서 ‘리발’과 ‘류행’은 ‘이발’과 ‘유행’으로, ‘로인’과 ‘루각’은 ‘노인’과 ‘누각’이 된다. 두음 법칙은 둘째 음절 이하에서는 역시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남녀’ ‘진리’로 쓰면 된다. 또한 두음 법칙은 외래어에는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라디오’ ‘리본’과 같은 표기가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끝말잇기를 할 때에도 너무 쉽게 게임이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은닉’을 외쳤을 때 ‘익명’으로 받을 수 있어서 게임은 지속될 수 있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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