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칼럼] ‘멸종위기 1급’ 치타에 슬픈 수식어가 붙은 까닭

입력
2018.09.12 14:00
동물계의 대표적 단거리 달리기 선수 치타는 '멸종 위기 1급'이라는 슬픈 수식어를 갖고 있다. 픽사베이
동물계의 대표적 단거리 달리기 선수 치타는 '멸종 위기 1급'이라는 슬픈 수식어를 갖고 있다. 픽사베이

“순간 최고 속도 시속 120㎞. 육상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달리기 선수. 전 지구상에 7,000마리 밖에 안 남은 멸종 위기(취약종·VU) 동물.”

바로 치타를 이르는 말이다. 사자의 순간 최고 속도가 시속 65㎞이고 사람이 시속 35㎞쯤 되니 치타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동물들과 100m 달리기를 하면 언제든 월등하게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다. 몸길이만큼이나 긴 꼬리는 달릴 때 균형추 역할을 해서 급작스레 방향을 바꾼다든지 할 때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게 몸의 밸런스를 맞추어준다. 

이런 위대한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치타는 ‘1급 멸종 위기 동물’이란 너무나 슬픈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치타는 사실 하루하루를 멸종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 치타같이 빠르고 적수가 없을 것 같은 육식동물이 멸종 위기에 몰려있을까? 치타가 주로 잡아먹는 영양들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나 케냐의 마사이마라 같은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에 살지만, 국립공원이라는 일정 구역에만 가두어 놓고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게 막으니까 그 안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질병에 취약하고 근친도 많아 자꾸 숫자가 줄어드는 거다. (원래 치타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도나 시리아,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지대까지 폭넓게 살고 있었고, 인도와 에티오피아의 왕들은 그들을 길들여 사냥터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 보기엔 비겁할지는 모르지만 치타들은 사냥할 때 달리다가 균형을 잃고 쉽게 쓰러져 사냥 성공 확률이 높은 늙거나 어린 개체를 주로 사냥한다. 그런데 태어나는 어린 먹이들이 많이 없으니 굶는 날도 많아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진 거다.

멸종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치타의 습성도 문제다. 그들의 사냥은 보기엔 쉬운 것 같지만 우선 사냥 목표를 잘 찾아야 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였다가 한꺼번에 모두 쏟아부어야 하니 보통 하루에 한두 번 이상은 시도하기 힘들다. 치타는 말 그대로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다. 300m 이상을 최대 속도로 뛰고 나면 바로 지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대개 사냥하는 거리는 100m 이내이고 최대한 근접거리까지 접근하여 사냥을 시작한다.

사냥감이 많아 사냥 성공 확률이 높아져도 문제다. 사자, 하이에나, 들개들이 치타가 사냥할 때만 기다렸다가 치타의 사냥감을 강제로 채가는 얌체짓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사냥감이 많아 사냥 성공 확률이 높아져도 문제다. 사자, 하이에나, 들개들이 치타가 사냥할 때만 기다렸다가 치타의 사냥감을 강제로 채가는 얌체짓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사냥감이 많을 때는 그만큼 사냥 성공 확률도 높아지지만 많이 잡아도 문제가 생긴다. 대개 치타보다 강자로 통하는 사자나 하이에나, 들개의 먹이 사정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그들은 치타가 사냥할 때만 기다렸다가 치타의 사냥감을 강제로 채 가는 얌체짓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노력 않고 얻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거다. 치타는 그들 무리를 혼자선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으니 그저 입맛만 다시며 잡은 사냥감을 포기하고 다시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굶주린 배로 다시 사냥해봤자 잡을 확률만 점점 줄어들고 기운만 더 쑥 빠져 버린다. 그래서 먹이가 부족한 야생에선 새끼 낳기를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굶어서 죽는 치타 새끼들도 의외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치타의 멸종 시계는 이미 예약을 해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치타는 워낙 우아하고 빠른 동물로 알려져 있어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서 인기 1순위다. 하지만 환경이 열악한 동물원에서는 번식할 확률이 더욱 낮다. 최종욱 수의사 제공
치타는 워낙 우아하고 빠른 동물로 알려져 있어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서 인기 1순위다. 하지만 환경이 열악한 동물원에서는 번식할 확률이 더욱 낮다. 최종욱 수의사 제공

치타는 워낙 우아하고 빠른 동물로 알려져 있어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서도 서로 키우려고 경쟁하는 인기 1순위 동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넓은 자연 속에서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환경이 열악한 동물원에서는 당연히 번식할 확률이 더욱 낮다. 그래서 현재 같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선 치타는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치타의 양쪽 눈에는 진한 눈물자국 같은 검은 줄무늬가 눈 안쪽에서 입 바깥쪽까지 나있는데 마치 앞으로의 멸종을 예고하는 것처럼 더욱 슬퍼 보이기도 한다. 조물주도 그들의 슬픈 처지를 미리 알고 이런 특이한 줄무늬를 얼굴에 새겨 놓았을까? (눈물 자국의 역할을 굳이 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햇빛의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치타는 평균 3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2년 정도 암컷 혼자서 키운다. 언스플래시
치타는 평균 3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2년 정도 암컷 혼자서 키운다. 언스플래시

새끼는 평균 3마리를 정도를 낳고 2년 정도 다 클 때까지 암컷 혼자서 그 많은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며 키운다. (앞서 언급했듯 새끼를 키우기 힘든 환경이 되면 스스로 산아제한을 하기도 한다.) 어미는 새끼들을 위해 어린 영양 새끼들을 산 채로 잡아다 어렸을 때부터 사냥 연습을 시킨다. 그래서 그런 학습이 제대로 안 된 동물원 치타들은 야생에 풀려나도 스스로 사냥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소위 ‘학습 소외자’ 들인 셈이다. 그래서 혹시 자연에 풀어주려면 먼저 일정 기간 적응할 때까지 이런 훈련과정들을 지속적으로 거쳐야 하는 거다. 새끼는 어렸을 적에는 목부터 등을 따라 멋진 갈기털이 얼룩말처럼 나있다가 3개월 후면 다 없어지고 바닷가 조약돌 같은 크고 작은 점무늬가 몸 전체에 골고루 퍼지기 시작한다. ‘치타’란 말도 힌디어로 얼룩무늬라는 뜻이란다. 

수컷들은 독립해서 홀로 살든지 소수의 무리를 지어 사자처럼 협동 사냥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누나 물소 같은 큰 동물들도 간혹 사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치타는 ‘홀로서기’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무리도 짓지 않고 외롭게 혼자 살아가니 늘 춥고 배고프게 보이기도 하지만 원래 진정한 맹수의 멋이란 호랑이나 표범처럼 홀로 서는 것이 아닐까. 

치타의 가속 비결은 유연함과 탄력성에 있다. 픽사베이
치타의 가속 비결은 유연함과 탄력성에 있다. 픽사베이

치타의 가속 비결은 유연함과 탄력성에 있다. 치타는 척추가 완벽한 S자 모양으로 휘어졌다 펴질 정도로 용수철처럼 유연하고 앞발과 어깨뼈 관절이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할 수 있게 해부학적으로 특화 진화되었다.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발가락의 발톱들이 다른 고양잇과 동물들처럼 발가락 안으로 감춰지지 않고 늑대나 개처럼 늘 바깥으로 나와 있어 항상 스프린터처럼 땅을 박차고 스피드를 올릴 준비 상태가 되어 있다. 

사람들이 말로만 치타를 귀족처럼 우아한 동물이다 부르지 말고 얼굴에 눈물자국까지 새겨진 그들을 더 슬프게는 안 했으면 좋겠다. 치타가 사는 야생 환경이 더욱 넓어지고 인간의 간섭이 더 최소화되어 영양들도 번성해지고, 사자나 하이에나의 사냥터도 확장시켜 치타가 사냥한 먹이가 온전히 그들의 차지가 되었으면 정말 바랄 게 없겠다. 그들은 노력한 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아주 작은 자유를 갈망하는 것뿐인데 이 작은 소원마저도 들어주기 힘들다면 그들은 인간과 지구를 원망하면서 영원히 그리고 빠르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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