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 친구 잃고 눈물 흘리는 돼지, 감정 있는 생명체 맞죠”

입력
2018.09.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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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과 사람이야기]세계적 인기 반려돼지 에스더 

 미니 돼지인 줄 알고 입양했는데 

 키워보니 300㎏ 나가는 일반종 

 채식주의자 변신한 젠킨스∙월터 

 직업 바꿔 동물보호 농장 운영 

 돼지의 미소∙사랑이 주는 행복 

 ‘에스더 효과’에 팔로어 138만명 

데렉 월터(왼쪽)씨와 스티큰 젠킨스씨 사이에서 에스더가 미소 짓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데렉 월터(왼쪽)씨와 스티큰 젠킨스씨 사이에서 에스더가 미소 짓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도시인 중에 농장에서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돼지의 도축 과정을 본 사람은 더 드물 것이다. 우리는 보통 돼지를 식탁 위 삼겹살이나 베이컨, 아니면 소시지 등 고기로 접하고 있다.

돼지가 단순히 한 점의 고기가 아닌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감정이 있는 생명체’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가족이 있다. 반려돼지 ‘에스더’(6세ㆍ암컷)를 기르는 두 아빠 스티브 젠킨스, 데렉 월터씨다. 에스더 가족은 유수의 방송과 신문에 등장하는가 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 팔로어만 138만여명에 달하는 등 전세계에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미 에스더 관련 책도 3권이나 발간했다. 이들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운영하는 농장동물 보호소 ‘오래오래 행복한 에스더 생츄어리’(Happily Ever Esther Sanctuary)를 찾는 이들만 연 3,000여명이 넘는다. 자원봉사 신청도 줄을 이어 올해 신청은 거의 마감됐다. 올해 초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된 오브차카 종 ‘앨리스’를 입양해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깊은 젠킨스, 월터 가족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노트북을 보고 있는 스티브 젠킨스씨 옆에 앉아 있는 에스더. 에스더 가족 제공
노트북을 보고 있는 스티브 젠킨스씨 옆에 앉아 있는 에스더. 에스더 가족 제공

처음에는 미니돼지인줄 알고 입양했다고 한다. “수의사는 아기돼지의 꼬리가 잘린 것을 보고 일반 돼지라고 추정했다. 돼지를 입양 보낸 측과는 연락이 두절됐고 속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돼지와 사랑에 빠졌고, 포기할 수 없었다.”

2012년 반려돼지 에스더와 인연을 맺은 젠킨스와 월터씨. 그들은 에스더를 포기하지 않고 대신 자신들의 삶을 180도 바꿨다. 그들은 에스더와 함께 하면서 채식주의자(비건)가 됐고, 본업을 그만두고 동물 활동가가 됐으며, 그들의 친구와 가족을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다.

젠킨스씨는 “처음부터 인기를 얻으려고 SNS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단지 에스더를 보고 싶지만 자주 보러 오기 어려운 친구와 가족들을 위해 열었다”며 “하지만 에스더가 짓는 미소, 에스더가 보여주는 사랑을 좋아하는 팬들이 늘면서 점차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에스더의 지능, 성격, 미소를 보고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을 ‘에스더 효과’(Esther Effect)라고 부른다.

이불 덮고 푹 자는 에스더. 에스더 가족 제공
이불 덮고 푹 자는 에스더.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를 입양하기 전까지 젠킨스씨는 잘 나가는 부동산 중개인이었고, 월터씨는 마술사로 활동했다. 에스더를 위해 농장을 열었을 때만 해도 본업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에스더의 인기는 너무나 폭발적이었다. 60여 마리의 농장동물을 관리하고 에스더의 페이지를 관리하고, 매장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이들은 “물론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는 건 쉽지 않았다. 그만두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특히 생츄어리 동물들이 아프거나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에스더의 지능은 놀라운 수준이다. 집에 있는 모든 문, 특히 냉장고 문을 열 줄 안다. ‘완벽한 절도’를 위해 젠킨스씨와 월터씨가 안 볼 때를 기다렸다가 몰래 음식을 꺼내먹기도 한다.

데렉 월터씨가 자고 있는 에스더를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는 스티브 젠킨스씨. 에스더 가족 제공
데렉 월터씨가 자고 있는 에스더를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는 스티브 젠킨스씨.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는 우리가 말하는 것,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 가족과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6월 에스더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반려견 셸비가 떠났을 때 에스더는 눈물까지 흘리며 슬퍼했다. 2년 전 여름에는 셸비가 이빨이 부러져 아파하고 있을 때 에스더가 등나무 가지를 구해서 가져다 준 일도 있었다. 이들은 나중에 등나무 줄기에 면역물질이 많이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에스더는 최근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보통 식용을 위해 길러지는 돼지는 6개월 안팎에 도축이 되기 때문에 유방암에 걸리거나 수술을 받는 경우는 없다. 수술로 인해 젖꼭지 2개가 없어져 외모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빼곤 에스더의 수술 경과는 다행히 좋다.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돼 에스더 가족에 입양됐던 앨리스가 공을 물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돼 에스더 가족에 입양됐던 앨리스가 공을 물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와 반려견 앨리스, 필과 칠면조 등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와 반려견 앨리스, 필과 칠면조 등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 가족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올해 초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이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170마리 개 중 1마리인 ‘앨리스’를 입양했다. 하지만 얼마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앨리스는 급사했다. 젠킨스씨는 “이처럼 잔인한 농장은 전 세계에 존재한다. 앨리스가 개농장에 갇혀있는 것이나 에스더가 스툴에 갇혀있는 것은 차이가 없다”며 “모든 생명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일반 돼지와 함께 사는 것도 독특하지만 이들이 동성커플이라는 점 때문에 받는 편견도 있다. 부정적 메일도 많이 받지만 이를 능가하는 가슴 따뜻한 메시지가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자녀들에게 “에스더는 아빠가 둘”이라고 소개하는 부모들에게서 받는 메시지로부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가족의 형태는 달라도 사랑과 행복이 가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란히 누워 있는 에스더 가족. 에스더 가족 제공
나란히 누워 있는 에스더 가족.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의 두 아빠 스티브 젠킨스(왼쪽)와 데렉 월터, 에스더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의 두 아빠 스티브 젠킨스(왼쪽)와 데렉 월터, 에스더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에스더 가족 제공

“에스더를 보고 기뻐하며,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킨다. 또 수천명으로부터 우리가 ‘에스더 인증’(Esther Approved)이라고 부르는 채식을 시작했거나 고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다. 많은 농장 동물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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