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ㆍ담] “정부, 분기별로 소득주도성장 성과 보이려는 조급증 버려야”

입력
2018.09.06 20:00
28면

정부 소득주도성장 성과 측정위해

없애려던 가계동향조사 부활시켜

금융소득 파악 어렵고 조사도 기피

분기별 소득분배 추적 거의 불가능

조사 예산 아무리 퍼부어도 비슷

발표 때마다 정치적 논란만 거듭

통계는 ‘경제 건강’ 살피는 데이터

정치 외풍 탓 부정확하게 나오면

엉뚱한 처방으로 경제만 더 골병

김낙년 동국대 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분배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시장과의 충돌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소득주도성장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정책의 유연성을 잃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2018-09-06(한국일보)
김낙년 동국대 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분배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시장과의 충돌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소득주도성장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정책의 유연성을 잃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2018-09-06(한국일보)

“가계동향조사는 지금 방식으로 예산을 퍼부어봐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정부가 분기별로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보이겠다는 조급증부터 버려야 한다.”

한국 사회의 소득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온 경제사학자 김낙년(61) 동국대 교수는 최근 벌어진 소득통계 논란과 관련해 6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의 생각은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중단하고 대신 여러 행정자료로 보완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소득을 살피려던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한계가 있는 가계동향조사에 예산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제 강점기 이후 100여년 동안의 통계자료를 집대성해 한국 경제를 실증 분석한 기념비적 성과인 ‘한국의 장기통계’의 연구 책임자로 활동했다.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국내 소득불평등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통계청 조사에만 의지하지 않고 소득세, 상속세 등 국세청 자료와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이용해 정확도를 높인 연구논문을 여러 편 내 주목을 받았다. 통계청 요청으로 조사 개선 자문도 하고 있는 그를 연구실에서 만나 가계동향조사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들었다.

-통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통계청 가계조사의 신뢰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더니, 갑자기 통계청장 바뀐 걸 두고도 말이 많다. 이번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는 믿을 만한가.

“소득을 제대로 조사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월급쟁이라면 지난 달 소득이 얼마였는지 알 수 있겠지만, 금융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얼마냐고 물으면 누구도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사업자의 경우 총수입에서 각종 비용을 빼서 소득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예컨대 금융소득의 경우 가계동향조사에서 파악되는 것이 5%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조사 자체를 기피하거나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가구가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이 조사에 의거해서 지니계수와 같은 소득분배 지표를 구했지만, 실태와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재작년에 통계청이 이 조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나.

“2010년부터 가계의 자산ㆍ부채ㆍ소득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시행해 온 가계금융복지조사가 있는데, 가계동향조사보다 규모가 훨씬 큰 2만 가구를 조사하고 있다. 다만 이 소득 조사도 앞에서 언급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의 근로소득 연말정산 자료나 종합소득세 신고 자료, 보건복지부나 행정안전부의 각종 행정 자료를 이용해 보완하고 있다. 그 결과 소득 파악의 정확도는 크게 개선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지니계수(0.357)는 가계동향조사(0.304)보다 크게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니계수: 대표적인 소득분배 지표로 빈부 격차와 계층간 소득불균형 정도를 나타낸다. 0부터 1까지의 수치로 표현되는데, 값이 ‘0’(완전평등)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완전불평등)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조사는 연간 조사다. 폐기하려던 가계동향조사가 되살아난 것은 정부 각 부처와 학계에서 분기별 조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많았고, 급기야 지난해 예산 편성 때 통계청이 요구도 않은 관련 예산을 여당에서 급하게 끼워 넣었기 때문으로 경위가 알려져 있다.

“정부는 중점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통계적으로 추적하기를 원했고, 분기별로 발표되는 시의성 있는 통계를 얻고자 했다. 더구나 가계동향조사가 종료되는 시점인 2017년 4분기에 하위 20%의 소득이 10%나 뛴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렇지만 올해 1분기와 2분기의 실적은 하위 20%의 소득이 급속히 떨어지고, 소득분배가 악화한 것으로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거꾸로 소득주도성장을 향한 칼이 된 형국이다.”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를 2016년 말 중단하기로 결정했지만 2017년 말까지 표본을 줄이고 방식을 바꾸어 간이소득조사로 이어갔다. 그런데 가계동향조사가 부활하면서 2018년 표본이 다시 개편됐다. 따라서 비교 대상이 된 2017년과 2018년의 추이에는 이러한 조사 단절의 영향이 일부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요한 것은 가계동향조사가 폐기 결정에 이르게 된 소득 파악 부실 문제를 그대로 안은 채 부활했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통계를 검토해 보면 금융소득은 전체의 10% 밖에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계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문제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미국의 경우 우리의 가계조사에 대응하는 인구동태조사(Current Population Survey)가 있다. 여기서는 6만 가구를 대상으로 경제활동 상황을 매달 조사하지만, 가구 소득은 3월에 한번만 조사한다. 작년 1년 동안 소득이 얼마였는지 묻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소득자가 2월에 전해 연도의 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기 때문에 이미 자기 소득이 얼마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대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의 소득이 얼마였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은 내년 가계동향조사를 확충하려고 예산을 올해보다 6배 가까이 늘려 잡았다. 가계동향조사 유지ㆍ예산 확충은 잘한 결정인가.

“가계동향조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부활시켜서 예산을 퍼부어봐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계부를 쓰게 하든 면접 조사를 하든 자신도 잘 모르는 소득을 조사하는 셈이니까. 더구나 이 소득 통계가 분기별로 발표될 때마다 정치적 논란이 거듭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나중에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와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면 어느 통계를 믿어야 할지 국민들은 더욱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정부가 분기별로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보이겠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가계의 소득분배를 분기별로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그렇게 하는 나라도 없다. 통계청이 소득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종래 방식 대신에 행정 자료를 보완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위주로 간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를 뒤집어 혼란을 자초한 것이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통계청 등 정부 공식 통계로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최근 상황은 어떤가.

“소득분배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나빠졌다. 성인 인구 중 상위 1%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서 12%로 뛰었다. 고도성장기에는 성장과 분배가 양립하고 있었는데, 저성장으로 들어서면서 분배가 악화하는 고통이 가중된 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추세 변화가 생겼다. 근로소득의 경우에는 상위 10%보다 하위 50%의 소득 상승이 더 빨라 불평등 완화 조짐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금융소득이나 사업소득의 불평등은 여전히 확대되고 있어 이를 상쇄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는 2016년까지 소득세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최근 소득 분배 상황은 관련 자료가 발표되지 않아 알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현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이다. 하지만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제가 많다고 보나.

“최저임금 인상은 가격에 직접 손을 대는 정책인 만큼 반발이 컸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형성된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급격하게 인상하다 보니 관련자들이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정책이 소득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그보다는 근로장려세제 같은 것이 훨씬 실효성도 있고 부작용도 적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는 것도 여유 있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 상공인은 더욱 궁지로 몰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 두 정책 모두 정책 의도에 반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분배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시장과의 충돌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정치 쟁점화화면서 정책의 유연성을 잃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이번 논란으로 통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효과는 있는 것 같다.

“경제를 사람에 비유하면 통계는 체온이나 혈압을 재듯 건강을 살피는 데이터다. 그런데 정치적인 영향으로 그런 데이터가 부정확하게 나온다면 엉뚱한 처방으로 경제가 골병이 들 수도 있다. 이번 논란은 정부 정책의 평가에 통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환기시켰지만, 거꾸로 통계의 작성이 정치적 영향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통계에 대한 개입이 그 신뢰성에 대한 의문으로 번지면 우리 사회 전체가 두고두고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인터뷰=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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