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법무ㆍ검찰개혁위 1년 활동 이끈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

#법원의 비밀 장악 당할까 우려해
검찰 수사에 영장 기각 등 비협조
공수처 필요성 깨닫는 좋은 계기

#검찰이 독점했던 특수수사 영역
공수처ㆍ경찰과 경쟁체제가 되면
권력이 검찰 손잡는 일 사라질 것

#양승태 사법부-청와대 유착
재판에 영향 여부와 상관 없이
법원 스스로를 모독한 행위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이충재 수석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1년 동안의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 활동을 돌아보며 검찰 개혁을 비롯한 법조계 현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18-08-27(한국일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무부 탈검찰화 등 굵직한 검찰개혁 방안을 제시한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위원회 권고안 다수는 법적ㆍ제도적 장치 등으로 현실화돼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원장을 마치고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요구인 검찰개혁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둔다”고 밝혔다. 공수처안 마련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는 한 원장은 “최근 드러난 사법농단 사태를 보면서 공수처가 있었다면 법원과 검찰의 불필요한 신경전이 사라져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낸 것은 큰 성과다.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가 낸 수사권 조정안이 밑바탕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에서 올해 초 법무ㆍ검찰개혁위안과 경찰개혁위안을 토대로 초안을 만들었는데 우리 안이 더 구체적이어서 참고가 많이 됐다고 본다. 그 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저와 박재승 경찰개혁위원장이 자문 역할을 했는데, 두 장관이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해와 사안을 깊게 꿰뚫고 있었다. 거의 과외수업까지 받고 오다시피 했다고 하더라.”

-그 과정에서 ‘검찰 패싱론’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불만을 표출한 뒤에야 검찰 의견을 수렴했는데 매끄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논의 과정에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들어왔다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거다. 그 분들은 기관의 위상과 체면 때문에 어떤 합의에도 사인을 할 수 없는 위치다. 과거 정권에서 번번이 수사권 조정 합의에 실패한 이유가 당사자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한 발 떨어져 있는 장관들이 먼저 합의를 한 뒤 기관들 의견을 수렴하는 쪽으로 바꿨고, 그런 프레임이 효과를 발휘해 합의에 이르게 된 요인이 됐다.”

-이번 합의안에 검찰의 주요 인지수사 기능을 그대로 둔 것을 놓고 완벽한 수사권 조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이 다시 권력과 유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고위공직자 범죄와 부패 범죄는 공수처가 맡게 된다. 경찰도 지금은 미약하지만 실력을 키워 특수수사에 뛰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특수수사 영역에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같이 들어가 경쟁하는 체제가 된다. 대형부패와 공직비리가 더 이상 발 붙이기 어렵다는 긍정적 측면 외에도 기존의 검찰 독점이 깨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경찰이 하려 해도 검찰이 빼앗아 갔는데, 이젠 불가능하다. 더 이상 권력이 특수수사를 통해 검찰과 손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보면서 공수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공수처가 맡기에 적격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재판거래’라든지 법원행정처의 전횡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 판사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고 자료 제출에 적극 협조하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법원과 검찰의 관계 때문이다. 법원으로서는 미묘하고 민감한 사안이 검찰에 넘겨질 경우 검찰이 법원의 비밀을 모두 장악한다는 우려가 있다. 양자의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공수처가 이 사건을 맡았다면 법원을 압박하는 일도 없고, 그것만 처리하고 끝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다. 법원이나 검찰이나 공수처의 필요성을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된 셈이다.”

-국회에 넘어간 공수처안을 보면 애초 법무ㆍ검찰개혁위가 만든 초안에서 많이 후퇴했다. 국민은 호랑이를 그리라 하는데 위원회는 불독을 그렸고, 법무부는 다시 애완견을 만들어놓았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이런 공수처로 거악을 척결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위원회가 공수처에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조문 한 자 한 자까지 나름대로 완벽한 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검찰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 검찰의 감시견 역할을 하도록 규모를 상당히 줄인다고 줄였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슈퍼공수처’니 하면서 압박하니까 법무부가 수사인력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공수처가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법무부안보다 위원회안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안을 만들었다 해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안이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검찰출신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심하지 않은가.

“개혁의 꽃이 입법화고 제도화다. 정책 입법화가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꼬이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올해 가을과 내년 상반기에는 선거가 없으니 그 사이에 여야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공수처 법안의 경우 검찰이나 법원의 반대도 없고, 국회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형성됐을 거라 생각한다. 국회 사법개혁특위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합의가 가능한 지점까지 속히 법률로 만들어줘야 한다.“

-검찰개혁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요체다. 특히 대통령의 일방적 검찰총장 임명권을 두고 논란이 많다. 최근 대검 검찰개혁위원회가 총장후보추천위원 구성에서 법무부 영향력을 배제하고, 후보 2명을 법무부장관에게 추천하면 이중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개선안을 권고한 바 있는데 바람직한 방향 아닌가.

“검찰총장 임명과 검찰간부 인사권이 딜레마다. 권력이 검찰을 장악하는 주요 수단이 인사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 집단과 검찰 간의 이해관계 공유를 억제하려면 국민적 참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전적으로 가져서도 안되고, 검찰 고위층이 좌지우지해서도 안 된다. 우리 위원회에서도 검사장 직선제 필요성 등을 제기했지만 본격적인 논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해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공론화 작업을 벌여 참여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최근 대법원장이 과거 일방적으로 지명했던 헌재 재판관을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추천한 것처럼 검찰의 자체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개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무일 총장 체제에서 여러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는데, 검찰 조직이나 검사 개개인이 개혁의 당위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검찰 내부에서는 ‘너무 심하다’ ‘억울하게 비판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충분한 합의점에 이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개혁이란 게 바깥으로부터,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최근 안팎에서 검찰개혁 요구가 분출되다 보니 수용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 같으면 검찰이 직권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몇 백 건을 스스로 하고 있다. 손에 잡히는 개혁은 당장 실행하자는 쪽으로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선 검찰 전체가 찬동할 만큼 거대한 개혁의 흐름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점이 아쉽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사태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아무리 상고법원 설치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법부와 청와대 유착의 실상은 법원에 대한 얼마 남지 않은 신뢰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 ‘배신감’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법원행정처의 컴퓨터에 든 내용을 보면 사법부와 청와대의 정책협의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다.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을 언급하면서 상고법원 도입에 활용하는 것 자체가 법원 스스로를 모독하는 행위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급법원 판결에 불만을 털어놓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정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단칼에 내쳤다. 재판 자체를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어정쩡한 태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조직이기주의라는 점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지 않나.

“현재 법원은 잘못된 것은 개혁하자는 움직임과 그래도 우리 조직인데 보호해야 하지 않느냐는 두 흐름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금의 사태를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본다. 지금 시점에서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만들었던 사법개혁위원회 같은 개혁기구를 출범해 근본적인 것부터 논의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민적 차원의 개혁위를 만들어 현재의 폭로전을 넘어 미래의 사법부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판사들의 사법부가 아닌 국민의 사법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무죄 판결이 논란이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변인데 적잖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법무ㆍ검찰개혁위도 젠더폭력 관련법의 재정비를 촉구하지 않았나.

“현재 성폭력법이 형법과 특별법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다, 구속요건도 어지럽고, 양형도 들쭉날쭉이어서 성폭력 종합 입법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안 전 지사 사건으로 문제가 되는 ‘비동의 간음죄’는 어떤 식으로 넣을 것인지, 직장에서의 위력 부분은 어떻게 세밀한 규정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서 국민들이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위원회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하지 못했던 차에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와서 1년 내에 각계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인터뷰=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