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 칼럼] 소득주도는 급하고 혁신성장은 느리다

입력
2018.08.27 18:23
수정
2018.08.27 18:56
30면

IT 혁신이 ‘고용 없는 성장’ 초래

분배 악화 부른 소득주도의 역설

실사구시 경제팀 꾸려 총력전 펴야

한국경제는 50년 넘게 대기업의 투자와 수출에 의존해왔다. 자본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2%대 저성장 고착화와 양극화 심화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나온 배경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내수를 살리고 고용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라는 공감대에도 불구, 최근 고용ㆍ분배 지표가 악화하면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소득주도 성장을 설명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경제는 50년 넘게 대기업의 투자와 수출에 의존해왔다. 자본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2%대 저성장 고착화와 양극화 심화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나온 배경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내수를 살리고 고용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라는 공감대에도 불구, 최근 고용ㆍ분배 지표가 악화하면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소득주도 성장을 설명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촌동생이 통신기업 KT에 다닌다. 그가 입사했던 1991년 6만5,000명이던 직원은 3분의 1(2만3,000명)로 쪼그라들었다. 불필요한 인력을 줄여 효율성을 높인다며 수차례 구조조정을 진행한 결과다. 왜 4만명 넘는 직원이 ‘불필요한 인력’으로 분류된 걸까. 유선전화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구리 전선이 광섬유 케이블로 바뀌는 등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다. 한국일보도 사정은 비슷하다. 30년 전 1,000명이 넘던 직원이 3분의 1로 줄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신문제작 공정을 자동화한 탓이다. 납 활자 기사로 지면 형태의 판을 만들어 신문을 찍던 제작국(주조ㆍ문선ㆍ정판ㆍ연판ㆍ윤전부)이 통째 사라졌다.

고용 감소는 산업 전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도시철도는 수동운전에서 전자동운전이나 무인운전으로 바뀌고 있다. 7년 전 개통된 지하철 신분당선은 1974년 개통된 1호선 운영인력(1㎞당)의 4분의 1로 움직일 수 있다. 불과 5년 전 89만4,000명에 달했던 금융ㆍ보험업권 취업자는 10만명 넘게 줄었다. 디지털금융 확산에 따른 점포 폐쇄로 인력 감축은 지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은 일자리 감소를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IT 혁신은 고용 없는 성장을 초래한 주범이다. 보수ㆍ진보를 떠나 일자리 지키는 경제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경제는 50년 넘게 대기업의 투자와 수출에 의존해 왔다.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2%대 저성장이 굳어졌고 자본집약형 수출이 대세가 됐다. 제조업 고용마저 줄어든 배경이다. 10년 전만 해도 경제가 1% 성장하면 1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고작 3만~4만개 늘어난다. 게다가 대기업 위주 성장은 세계 최고 불평등 국가를 낳았다. 자본은 과잉 축적된 반면 노동의 몫은 계속 줄어든 탓이다.

낙수효과는 사라졌다. 대기업이 투자해도 일자리는 좀체 늘어나지 않는다. 한계에 직면한 자본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 보자. 해서 나온 게 소득주도 성장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을 해소해 내수를 키우고 성장을 견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1년 성적표가 영 말이 아니다. 2년간 최저임금을 29% 올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했으나 일자리는 줄고 불평등은 더 커졌다. 왜 이런 역설이 벌어진 걸까.

J노믹스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세 바퀴로 굴러간다. 공정경제는 각 경제주체의 반칙 행위를 감독하는 정부의 기본 역할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성장’이라는 용어에도 불구, 노동의 몫을 키워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분배 정책에 가깝다. 고용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임금으로 성장을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본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이 되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결국 지속적인 성장으로 고용을 만들어 내는 건 혁신성장이다. 그런데 소득주도는 너무 급하고 혁신성장은 지지부진하다.

소득주도로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빈곤 가계를 지원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복지 강화에는 국민도 공감하고 야당도 반대하지 않는다. 영세 사업자의 부담 능력을 따지지 않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건 패착이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대신 창조경제만큼 모호한 혁신성장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속도를 내야 한다. 대기업 투자에 계속 의존하겠다는 건지, 중기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산업 분야 규제 혁신으로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건지, 혁신성장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분위기 반전이 절실하다. 엇박자를 내 온 김동연ㆍ장하성 경제 투 톱이 국민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진보적 가치를 토대로 좌우를 포용할 수 있는 경제팀을 새로 꾸리는 게 낫다. 양극화 해소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상관없다. 정치ㆍ사회는 진보 개혁, 경제는 실사구시 통합으로 가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죄가 없지만 경제정책마저 핵심 지지층을 의식하는 건 악수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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