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사각지대 놓인 울진 산양… 구조치료센터 좌초 위기

입력
2018.08.27 04:40
수정
2018.08.27 11:09
13면
구독

새 군수 취임 뒤 설계용역 중단

“중앙정부가 건립 운영” 입장 바꿔

문화재청,환경부는 “수용 못 해”

2018년 5월19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 녹색연합 제공
2018년 5월19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종 Ⅰ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 서식지 보전을 위해 경북 울진군에 건립할 예정이던 산양 구조ㆍ치료센터 건립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2013년부터 사업을 추진해 오며 부지도 매입한 경북 울진군이 최근 센터건립과 운영을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 관할부처인 문화재청과 환경부는 울진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방침이어서 센터 건립이 중단되거나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26일 경북 울진군과 문화재청, 녹색연합 등에 따르면 울진군은 최근 산양 구조ㆍ치료센터의 설계용역을 잠정 중단시킨 데 이어 이번 주 중 문화재청과 추가예산 확보를 비롯해 운영주체, 운영비 지원 등에 대해 논의한 후 사업 계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경북 울진과 인근 강원 삼척은 100여마리의 산양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최남단 산양서식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나 관리는 이뤄진 적이 없고, 구조와 모니터링은 지금까지도 민간단체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지난 5월 6일 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 불영사 방향 36번 국도에서 로드킬을 당한 후 숨진 채 발견된 산양. 녹색연합 제공
지난 5월 6일 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 불영사 방향 36번 국도에서 로드킬을 당한 후 숨진 채 발견된 산양. 녹색연합 제공

시민단체들이 2010년 폭설로 인해 25마리의 산양이 폐사한 것을 계기로 산양보호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2013년 울진군은 센터건립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2017년 6월 부지를 매입했다. 천연기념물 주관부처인 문화재청도 지난해 울진군의 요청에 따라 센터 건립 비용 3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전찬걸 울진군수가 취임한 이후 울진군이 돌연 운영비 부담을 정부가 지라고 주장하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울진군 관계자는 “사업비를 책정했던 5년 전보다 공사비, 인건비 등이 올라 건립비용도 추가로 필요한데 연 7억원 가량 소요되는 운영비까지 부담해야 한다”며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자체가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예산관련 규정상 인건비 등 운영비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정래진 주무관은 “이제 와서 건립과 운영을 문화재청이 다 떠맡으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추가 건립비용 지원은 검토해볼 수 있지만 운영비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2018년 4월13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 녹색연합 제공
2018년 4월13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종 관할 부처이지만 해당 지역이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여하지 않던 환경부는 울진군이 센터의 운영주체가 되면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지정해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울진군은 환경부가 지원하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다며, 건립도 운영도 정부가 해야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태영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는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산양보호 활동이 없었다면 현재까지 산양 개체 수 유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간 갈등으로 센터건립이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