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의 심야식탁] 치즈 반 쪽, 빵 반 쪽

입력
2018.08.29 04:40
17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산초 판사가 총독이 된다. 그가 다스려야 할 섬의 이름은 바라토리아. 하필이면 저렴하다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다. 떠나기 전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한 충고 몇 가지. 몸을 깨끗이 하고 손톱을 잘 깎을 것. 신분이 탄로 나지 않게 마늘과 양파를 먹지 말 것. 식사는 조금씩 음주도 절도 있게, 음식은 게걸스럽게 먹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트림을 하지 말 것. 산초는 맹세한다. 총독이 메추리고기와 닭고기로 식사를 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오직 빵과 양파로 연명해 나가겠다고.

그 맹세를 시험하듯 섬에 도착하자마자 인도된 곳이 호화로운 궁전의 커다란 홀, 깨끗하고 훌륭한 식탁. 하인들이 손 씻을 물을 가져오고 레이스 장식을 한 턱받이를 해주고. 산초 옆에는 의문의 한 남자가 손에 고래수염으로 만든 가느다란 막대를 들고 서 있다. 산초가 과일을 한 입 먹으려는 순간, 의문의 남자 접시에 든 과일을 막대로 톡톡, 그러자 득달같이 사라지는 과일 접시. 그 다음 접시, 그 다음 접시. 어김없이 막대가 가 닿고 음식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의문의 남자는 대답한다. 자신은 총독의 건강을 보살피는 의사이며 총독이 먹어도 되는 음식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토끼고기 요리는 부드러운 털이 있는 짐승이어서 안 되고, 송아지 요리는 스튜로 했으면 좋으련만 구운 고기여서 안 되고. 산초가 제일 좋아하는 잡탕요리는 시골 농부들 결혼식에서나 먹는 것이어서 안 되고. 그래놓고 먹으라는 게 막대과자 몇 개. 산초가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부터는 자신에게 즐거운 음식이나 진귀한 요리를 주려고 신경 쓰지 말라. 내 염소고기, 암소고기,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육포, 무와 양파에 길들여져 있어서, 행여라도 대저택의 호사스러운 요리가 들어가면 아첨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메스꺼워 하게 된다. 그러니 고기를 많이 넣고 끓인 냄비 요리를 내놓으시오, 고기를 많이 넣을수록 좋고. 마지막으로 덧붙인 산초의 말은 깊이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함께 지내고 함께 살아가면서 평화롭게 모두 함께 음식을 먹도록 합시다.”

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일. 그것만큼 이상적인 것이 있을까? 온갖 시련을 통과한 산초는 총독으로서 몇 가지 법령을 만든다. 먼저 생필품에 투기하는 자들을 없애도록 명령했다. 섬에서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지 포도주를 들여올 수 있게 하되, 포도주의 품질과 명성에 따라서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포도주에 물을 타거나 이름표를 바꾸는 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엄명을 내렸다.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먹는 일이 안정되어야 하는 법. 그밖에도 그는 턱없이 치솟아 오른 신발가격을 조정하고, 하인들의 봉급 기준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행관을 만들어 돌보게 한다. 산초의 몸에 이토록 위대한 혁명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니.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산초는 총독이 된지 사흘만에 총독직을 반납하고 자유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길 원한다. 손에 통치자의 지팡이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 낫을 드는 것이 더 좋다는 걸 깨달아서. 무분별한 의사의 인색함에 시달리느니 가스파쵸를 실컷 먹는 것이 더 좋으니까. 그가 떠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수행자로 나서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물리친다. 그가 원한 것은 당나귀를 위한 보리 조금과 자신을 위한 치즈 반쪽과 빵 반쪽. 짧은 여행에 필요한 만큼의 음식. 매일을 그리 살면 좋겠다. 눌러앉아 산해진미나 탐하지도 말고, 딱 그만큼의 음식으로. 벌거벗은 통치자처럼, 매일 떠날 여행자처럼.

소설가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