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사제들 아동 성추행, 교황청 “부끄럽고 슬프다”

입력
2018.08.17 17:39
수정
2018.08.17 19:1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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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공개 이틀 만에 사과 성명

구체적 재발방지 대책은 없어

교황 우유부단 리더십 시험대에

지난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남동부 바리에 있는 바실리카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은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사제들의 집단 아동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지 이틀만에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바리=EPA 연합뉴스
지난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남동부 바리에 있는 바실리카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은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사제들의 집단 아동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지 이틀만에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바리=EPA 연합뉴스

바티칸 교황청이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사제들의 집단 아동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지 이틀이 지나서야 공식 성명을 내놨다. 교황청은 “범죄행위이자,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규탄했지만,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은 적시되지 않았다. 가톨릭 내부에서조차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의 아동 성 학대 문제 해결에 있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레그 버크 교황청 공보국장은 이날 성명에서 “피해자들의 존엄과 신뢰를 배신한 행위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꼈다”며 성 학대를 범한 사제들과 이들의 범죄를 묵인한 주교들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지난 14일 주 내 6개 교구에서 70년 간 300명이 넘는 성직자들이 1,000여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성 학대를 자행했고, 가해자를 다른 교구로 전근 시키는 방식으로 조직적 은폐에 나섰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가톨릭 내부에선 교황청이 보다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내부 개혁 방안을 마련해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성적 학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바티칸은 희생자들을 초청해서 피해 사실을 경청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바티칸은 은폐 작업에 가담한 주교들을 불러 들여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늘 공언했지만 실제로 이행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사제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월 칠레에서 발생한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 학대 사건을 은폐한 주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CNN은 “교황이 이번 일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세계의 ‘도덕적 증인’으로서 역할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가톨릭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외부인들을 참여시켜 교단의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미국 가톨릭주교회를 이끄는 다니엘 디나르도 추기경은 “근본적 원인은 교단의 리더십 추락에 있다”며 외부인들을 참여시켜 독립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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