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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카메룬 대선

# 프랑스어ㆍ영어 이중언어 국가지만
‘프랑코폰’ 비야 36년째 대통령에
인구 20% 영어 사용자 ‘앵글로폰’
분리 독립 주장하며 “선거 보이콧”

# “대통령은 부재중” 잦은 외유에도
권력 도전 시도 용납 않는 비야
야권 후보 8명 난립... 결과 뻔해
폴 비야(왼쪽 두번째) 카메룬 대통령 일행이 12일 스위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다. 폴 비야 페이스북

10월 7일 아프리카 중서부 국가 카메룬이 7년 만의 대선을 치르지만, 한 달이 넘게 남았음에도 선거 결과는 명백해 보인다. 1982년 카메룬의 초대 대통령 아마두 아히조로부터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이래 36년째 집권 중인 폴 비야 현 대통령의 재집권이 유력하다. 재선에 성공하면 비야 대통령은 중도에 물러나지 않을 경우 2025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선거 결과보다 2016년부터 시작된 서부 앵글로폰(Anglophoneㆍ영어 사용자) 지역 주민들의 분리주의 운동과,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군 간 충돌로 유혈사태가 잇따르는 상황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앵글로폰 주민들의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불공정 대선 논란이 오히려 내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선 앞두고도 스위스 가는 비야

카메룬은 대통령 권력이 강하다. 의회가 있기는 하나 사실상 전국 정당은 여당인 카메룬인민민주운동(RDPC) 하나뿐이기에 현실적으로 거수기에 가깝다. 사법부도 최고위 법관의 임명권자가 사실상 대통령과 법무장관 등 행정부로 구성된 고위사법이사회에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카메룬을 비야 대통령 1인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통치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비야 대통령은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도 눈에 띄는 통치 행위를 하지 않는다. 비판자들은 “대통령이 항상 부재중”이라고 공격한다. 근래 들어 그의 잦은 외유가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비야 대통령은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지난 12일에도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로 떠났다. 건강이 좋지 않은 비야 대통령이 스위스에 있는 의사를 방문해 진료를 받는다는 것이 공식 설명이나, 제네바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머물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하여 ‘제네바 대통령’ ‘국왕’ 같은 풍자적 별명도 난무하고 있다.

민간단체 ‘조직범죄 및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는 관영 카메룬트리뷴의 보도를 전수조사한 것을 근거로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대통령이 임기의 최소 15%를 해외에서 보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카메룬트리뷴에 게재된 대통령 동정을 분석한 결과, 2017년에는 약 두 달간, 2006년과 2009년에는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카메룬트리뷴은 ‘선거용 악의적 분석’이라고 반박했다.

비야 대통령이 국내에 있을 때라도 딱히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 정부 운영은 필레몬 양 총리가 맡고, 비야 대통령은 수도 야운데의 대통령궁에서 주로 외교관을 접견한다. 대통령이 내각회의를 소집할 때는 오로지 개각 직후뿐이다. 올해 3월 15일 거의 3년 만에 직접 내각회의를 주재했다.

권위에 도전은 철저하게 탄압

여기에 대해선 다른 평가도 있다. 비야 대통령은 프랑코폰(Francophoneㆍ프랑스어권) 인사이고, 그가 임명한 총리는 항상 앵글로폰이었다. 카메룬은 옛 프랑스령인 동카메룬과 옛 영국령인 서카메룬이 합쳐서 만들어진 나라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이중언어 국가다. 전체 인구의 20% 정도인 앵글로폰 지역에 대한 사회적 차별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국가 통합을 위해 프랑코폰인 비야 대통령은 앵글로폰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야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권력을 나누려는 시도는 용납하지 않고 있다. 1992년 이전까지 카메룬은 비야 대통령이 지휘하는 카메룬인민민주운동 일당 체제였다. 첫 다당제로 치러진 대선에서 비야 대통령은 실제로 패할 뻔했다. 당시 비야 대통령은 40%를 얻어 사회민주전선(SDF)의 존 프루 은디(36%)를 아슬아슬하게 눌렀다. 비야 대통령이 간신히 선거에 승리한 것은 선거 전부터 야당 인사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한 데다가 민주진보국민연맹(UNDP)의 제3후보 벨로 부바 마이가리도 19%를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92년 대선에서 쓴맛을 본 비야 대통령은 야당 탄압과 권력 집중 작업에 착수했다. 1997년 5년이던 대통령 임기가 7년으로 늘어났고 연임 제한이 철폐됐으며 여당 RDPC와 UNDP가 사실상 보수 연합을 형성했다. 이후 치러진 세 번의 대선에서 비야 대통령은 항상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다른 정당들은 모두 지역 정당 내지는 부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북서부 출신인 존 프루 은디가 이끄는 SDF가 RDPC에 대항할 만한 정당으로 목소리를 내고는 있다. SDF의 집권 기반은 북서부주와 남서부주, 그리고 경제 중심지인 두알라가 위치한 리토랄주에 걸쳐 있다. 정치적으론 중도 좌파 성향이지만 언어상으론 앵글로폰 정당에 가깝다. SDF는 2018년 대선에서 폴 비야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76세로 고령이 된 존 프루 은디가 대선후보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비교적 젊은 50대 기업인 출신 조슈아 오시로 채우며 혁신을 표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도 결과는 뻔하다는 전망이 많다. 야당 후보가 오시 말고도 7명이 더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신생 ‘NOW 운동’을 창설하고 대선 레이스에 나선 유명 변호사 출신 아키어 무나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무나는 국제투명성기구(TI) 부회장 등으로 활동한 유명 국제 시민 운동가 출신으로, 자신이 카메룬 부패 청산의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소리(VOA)가 인터뷰한 한 유권자는 “오시와 무나 둘 다 앵글로폰 출신이라 그렇지 않아도 작은 야권이 쪼개지고 결국 비야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만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망한 앵글로폰, 분리주의 운동 가속

게다가 앵글로폰 주민들은 ‘선거에 대한 관심이 없다’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반정부 시위 이래 앵글로폰 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가난한 앵글로폰 지역에 개발과 자치를 약속하는 한편, 분리주의 단체는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분리주의 운동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맹렬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암바조니아’라는 국호까지 내세워 독립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앵글로폰 주민과 국제기구는 분리주의 확산을 정부가 정략적으로 부추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이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이들도 분리주의자로 몰아 임의로 구금하고 가혹하게 대했다는 것이다. 물론 분리주의 무장단체도 과격하기는 마찬가지다. 선거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테러를 가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또 앵글로폰 지역에 진입하는 프랑코폰 주민이나 외국인을 납치하고, 분리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앵글로폰 주민들조차 ‘검은 다리(blackleg)’라 부르며 공격하고 있다.

유혈사태 속에 북서부주와 남서부주에서는 나이지리아로 2만1,000명이 도피했고 16만명이 도시와 마을을 떠나 산속에서 살고 있다. 일부는 야운데와 두알라 등 카메룬 다른 지역의 앵글로폰 공동체로 이주했다. 카메룬 분쟁을 관찰해 온 국제위기그룹(ICG)에 따르면, 이런 과정에서 앵글로폰 주민들은 기존 등록 주거지에서 투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투표권을 상실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 주민 가운데서도 분리주의자들의 선거 보이콧을 지지하는 반응이 많아, 앵글로폰의 투표율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거 중앙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했고 대선에도 출마한 적 있는 인민행동당 대표 아야 폴 아비네는 “진짜 앵글로폰 주민이라면 선거 얘기를 하는 게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 지도부 일부가 집권 세력에 납치돼 선거를 치를 수 없을 지경으로 야당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비야 대통령이 진행 중인 분리주의자와의 전쟁은 오히려 앵글로폰 사회 전체를 극단주의로 몰아 넣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분리주의 무장단체는 선거 사보타주를 노리고, 평범한 앵글로폰 시민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거나 참여할 의지를 잃은 상황이라 비야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투표에서는 경쟁 후보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투표로는 환산되지 않는 앵글로폰의 불만을 잠재우지 않고서는 카메룬의 혼란상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선거가 오히려 내전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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