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석학칼럼] EU 방위에 대한 트럼프의 착각

입력
2018.07.29 18:28

이달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동맹국간 일련의 의견 불일치를 보여준 최신 작품이었다.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대서양 동맹의 핵심인 나토협약 5조에 따른 집단방위 원칙 준수를 거부한 바 있다.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모든 나토 회원국들이 즉시 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할 것을 요구하고, 이 지출이 궁극적으로 GDP의 4%에 도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후자의 제안은 예산상의 희생뿐만 아니라 유럽대륙에 상당한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GDP의 4%에 달하는 독일의 국방예산은 프랑스 국방예산보다 400억 유로(약 460억 달러)나 많다.

국제적 변덕이 점증하는 시기에 유럽인들은 악의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공동작업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 트럼프의 국방비 GDP 2% 이상 지출 요구는 근거도, 전례도 없다. 2014년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지 않고 있는 나토 회원국은 2024년까지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 바 있다. 다만 주목할만한 진전에도 불구, 일부 국가가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동맹국들과 연대를 유지할 필요성을 넘어, 우리 자신의 안전에 책임을 지는 것이 유럽의 관심사다. 내외부의 위협은 확산되고 있고, 이들 위협은 점점 연결되고 있다. 전형적인 사례가 시리아 전쟁이다. 7년 넘게 시리아 국민을 괴롭히던 공포스러운 인도주의적 비극은 EU의 기초를 흔들어 놓은 난민 위기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군비지출 규모에 대한 집착으로는 문제의 근원에 도달하지 못한다. 군비지출 증가는 우리 스스로 ‘유럽식으로’ 하지 않으면 대부분 비생산적이 될 것이다. EU의 총 군비예산은 이미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이며, 러시아의 4배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그 자원들이 어떻게 투자되고, 유럽 안팎에서 우리가 합동으로 나토 임무와 미국의 작전수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역량과 인프라를 갖추게 되는지 여부다.

트럼프는 나토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미국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미국의 안보보장이 군사적 대결을 막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나토 회원국들이 그들의 상호 방위 약속을 지키면서 미국이 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 지금까지 나토협약 5조가 적용된 것은 2001년 9월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때가 유일하다. 이후 나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엔이 위임한 국제안보지원군을 이끌었다. 이는 동맹의 역사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의 임무였다.

유럽은 미국에 귀중한 동맹국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2017년 12월 EU는 참여국이 공동 방위역량을 보다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항구적안보국방협력체제(Permanent Structured CooperationㆍPESCO)를 설립했다. PESCO는 또 2016년 ‘글로벌 전략’에 명시된 바와 같이 EU의 전략적 자립을 향한 진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나토의 유럽 기둥이 강화되면 미국은 최첨단 역량과 기술력을 갖춘 더 신뢰할만한 국방 파트너를 갖게 될 것이다. 유럽 방위산업의 분열을 줄이면 유럽의 경쟁력이 강화할 것이고, 이는 유럽과 미국의 군사기술 격차를 줄이는데 필수적이다.

다행스럽게도 EU의 공동 방위 및 안보 정책 아래 이 같은 새로운 계획들은 유럽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방위비 지출에 대한 집단적이고 건설적인 접근법은 우리 동맹국이 검토하고 있는 어떤 강제력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러한 공동 노력에 방해를 해왔다. 역설적으로, 그의 행정부는 우리 유럽인들에게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것을 요구하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공동 방위사업을 훼손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 협력에 대한 편견과 근시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은 그런 협력이 나토 작전과 중복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중복과 낭비의 진정한 원천은 유럽 국가들이 공동의 능력을 발전시키려고 할 때 직면하는 각종 방해물이다. 트럼프는 유럽 방위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에 반대한다. 유럽이 미국 수출에 덜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게 좀 더 자급자족을 하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미국산 무기, 장비 및 기술에 더 의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민간 및 군대 임무를 통해 세계 안보에 기여한 오랜 역사를 감안할 때 EU는 나토에 제공할 것이 많다. 방위에 관해 좀 더 견고하고 일관된 접근을 하는 EU는 나토를 더 강력하게 만들고 미국에 직접 도움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비외교적이고 일방주의적 십자군식 정책을 고집하기보다는 EU를 항상 자신의 나라를 방문한 친구로 대우하고, 집단 방어를 위한 유럽의 협력적 접근방식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