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축구라는 이름의 희망

입력
2018.07.20 18:4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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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선수가 16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두 팔을 들어올리며 국민들의 환대에 답하고 있다. 자그레브=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선수가 16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두 팔을 들어올리며 국민들의 환대에 답하고 있다. 자그레브=로이터 연합뉴스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교’가 있다.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를 따르는 종교다. 세례는 축구장에서 이뤄진다. 손으로 골을 넣는 동작을 취하면 신자가 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당시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을 재연하는 것이다.

▦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신적인 존재다. 그는 84년 세계적 명문 FC바르셀로나에서 당시 그저 그랬던 이탈리아 축구팀 SSC나폴리로 이적했다. 중하위권이던 팀은 87년 마라도나의 활약에 힘입어 남부 팀 최초로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A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가난한 남부 나폴리 사람들은 부유한 북부의 명문 구단 유벤투스와 AC밀란, 인터밀란을 제치고 트로피를 차지한 데 대해 열광했다. 마라도나가 SSC나폴리로 이적하며 팬들과 한 약속은 ‘리그 꼴찌를 해도 북부 부자 팀에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마라도나는 7년 동안 자신이 뛴 모든 경기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 2007년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빈민촌을 방문했다가 ‘박지성’을 발견한 적이 있다. 10대 소년이 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 상의 등쪽에 박지성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시아 선수라는 한계를 넘어 명문 구단의 일원으로 세계 축구의 중심을 누비던 박지성 선수의 모습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우간다 빈민촌 소년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켜줬을 것이다. 마라도나가 패배 의식에 젖은 나폴리 사람들에게 축구가 희망이고 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 16일 막을 내린 러시아 월드컵은 다시 한번 축구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인구 450만명에 불과한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은 값진 준우승으로 자국민에게 자부심을 안겼다. 지역 맹주 자리를 다투는 세르비아가 1승2패로 조별 예선 탈락을 했으니 그 기쁨은 몇십 배 더 컸을 것이다. 영국 BBC 뉴스는 월드컵 피날레를 다루며 러시아 특파원의 소회를 전했는데, 그는 “러시아에 거주한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가 이렇게 활기차고 우호적인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국민은 억압적 정치 체계 속 우울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축구가 품게 해준 희망과 꿈은 결국 위정자들이 적극 나서야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러시아 월드컵이 전 세계인의 가슴에 남긴 메시지다. .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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