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문 대통령ㆍ문 의장 협치가 먼저다

입력
2018.07.19 18:00

고비 때마다 ‘운빨’로 문 대통령 승승장구

갈등 과제 산적한 집권 2기엔 문희상 카드

청와대 국회 존중 의지로 의장에 힘 실어야

문희상 국회의장이 1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정세균 전 국회의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1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정세균 전 국회의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역시 정치 운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집권 후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수차례 고비 때마다 뜻밖의 상황이 발생해 사태를 반전시킨 경우가 많았다. 집권 초 인사파동 때, 또 제천 화재 등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 때도 그랬고, 특히 북한의 잇단 핵ㆍ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평화 구상이 조롱거리가 되고 평창동계올림픽의 흥행마저 위협받던 시기도 잘 넘겼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지만, 그들의 냉전적 오판과 무능까지 겹쳐 여권은 6ㆍ13 지방선거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대통령의 초반 ‘운빨’이 '도약기'에도 계속될지에 대해선 안팎에서 걱정이 많았다. 적폐청산과 기득권 개혁, 비정상의 정상화, 평화와 화해 등 비논쟁적 의제와 씨름했던 시기였던 지난 1년과 달리, 향후 1~2년은 국민 삶과 직결된 사회경제적 의제들과 싸워야 해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집단의 충돌과 저항이 격하게 표출될 터인테 정부가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폭을 둘러싼 논란과 아우성, 과거회귀 조짐을 꼬집으며 담대한 개혁을 촉구한 진보 지식인그룹의 선언 등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방선거 압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곡선이 확 꺾인 것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20대 후반기 국회가 문희상 의장 체제로 바뀐 것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사실 문재인 정부 2기의 성패는 국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즉 당면한 정치현안과 분초를 다투는 경제ㆍ민생 입법을 제때에 신속히 처리하는 협치의 틀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달려 있다. 환경은 척박하다. 여당의 전력이 보강되긴 했지만 여전히 여소야대이고 차기 총선이 다가올수록 야당의 견제와 공세 수위도 높아질 것이다. 여야 지도부의 리더십 이상으로 국회의장의 조정자 역량과 운전자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문희상 의장을 만난 것은 그의 운이 이어진 또 하나의 복이다. 3김 밑에서 정치를 배운 그는 남다른 친화력에다 정세를 읽는 분석ㆍ기획력은 물론 '포청천' '개작두'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추진력과 저돌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6선의 의정생활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경력을 두루 쌓으며 여야 정치권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것도 귀중한 자산이다. 문 의장이 취임사에서 "지난 1년이 청와대의 계절이었다면 이젠 국회의 계절이 돼야 한다"며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거나 여당의 양보와 책임을 강조한 것은 이런 자신감의 발로로 풀이된다.

그런 문 의장도 의장은커녕 20대 국회에 들어오지도 못할 뻔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 구원투수로 영입한 김종인 대표가 주도한 4ㆍ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는 치욕을 맛봤다가 전략공천으로 되살아났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재입성한 그가 결정적 시기에 과거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만났던 인연을 대통령과 의장으로 이어 가며 권력을 나누게 된 것은 참 묘하다. 참여정부 청와대 트로이카였던 유인태 전 정무수석이 국회 사무총장으로 가세한 것 역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과거의 동지적 관계가 미래의 우호적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국회 문법과 생리에 익숙한 문 의장과 유 총장이 파트너가 된 것은 수많은 암초를 헤쳐 나가야할 대통령의 복이지만, 그 복이 행운의 시작일지 불화의 씨앗일지는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1기가 여의도 중심의 대의정치보다 청와대 주도의 대중정치에 의존해 국회와 갈등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 의장과 유 총장은 참모정치, 측근정치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문 대통령과 문 의장은 여야 협치를 말하기 전에 청와대와 국회의 협치 의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국회를 존중하며 정의를 나누면 국회도 청와대를 존중하게 되고 피차 여론도 얻는 법이다. 그것이 말많은 민주정치의 리얼리티이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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