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 자격 갖춘 요양병원 1%뿐

입력
2018.07.20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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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제도 도입 5개월 지났지만

17곳에만 필수기관 윤리위 설치

노인 많은 요양병원 이행율 0.3%

10건 중 9건은 상급ㆍ종합병원서

“낮은 수가ㆍ복잡한 절차에

환자들, 죽음 결정권 빼앗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북지역의 A요양병원은 종합병원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았지만 장기 입원이 불가능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A병원은 지난 2월 ‘연명의료 결정제도’ 도입과 동시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를 설치해 자격을 갖췄다. 하지만 그후 5개월이 넘도록 아직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이행한 적이 없다. 요즘도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은 심폐소생술(CPR)을 필수적으로 실시하고 임종기 환자 10명 중 7명은 인근 대학병원으로 보낸다. 이 병원 간호부장은 “연명 치료를 계속하는 것보다 중단하는 경우의 서류와 절차가 더 복잡한데다 수가도 못 받으니 의료진들이 적극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일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도 시행일인 2월4일~7월3일까지 총 1만1,528명의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는데, 10건 중 9건은 상급종합병원(59.2%)과 종합병원(36.8%)에서 이행됐다. 노인 환자들이 많이 머무는 요양병원(0.3%)이나 중소병원(3.7%)의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환자 대다수가 본인이 치료받던 기관이 아닌 상급종합병원을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요양병원 중 연명의료 중단 이행의 필수조건인 윤리위를 설치한 곳은 전체 1,525곳 중 1.1%인 17곳뿐. 나머지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발급받았는지 확인하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다. 때문에 이미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향서를 등록한 환자도 연명치료를 계속하다 임종이 임박하면 응급실로 되돌려 보낸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요양병원에 가신 분들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응급실로 다시 오는 사례가 많다”며 “임종기 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쏠림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윤리위를 설치한 극소수 요양병원들조차 제도 참여가 쉽지 않다. 현재 심폐소생술ㆍ인공호흡기ㆍ혈액투석ㆍ항암제투여 등 4가지 의학적 시술이 모두 가능한 기관이 연명의료 중단시 각종 수가를 지급하는데,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의 경우 항암제 투여 등을 하는 곳은 극히 드물어 윤리위를 설치해도 수가를 받지 못한다. 역시 윤리위가 설치돼 있으나 한번도 활용한 적이 없는 B요양병원의 간호부장은 “고령인 환자의 의식이 온전하다고 볼 수 없어 가족 전원을 설득해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수가를 받지 못하니 현장에선 굳이 복잡한 절차를 하기를 꺼린다”며 “환자나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원할 경우, 의료진이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는데도 상대적으로 서류가 간편한 심폐소생술거부(DNR) 동의서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피해를 보는 것은 존엄한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빼앗기는 환자들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가 직접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고, 가족들이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의료진이 돕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데 낮은 수가와 복잡한 절차 등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커 죽음이 편의주의적으로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존엄사를 위해 대형병원 중심이 아니라 호스피스기관, 요양병원, 가정 등 보다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곳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하도록 제도가 안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제도 첫발을 떼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라며 “하반기에는 요양병원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수가 지급 방안도 건강보험정책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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