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책임 인정하면서 경비정만 탓한 세월호 배상 ‘반쪽 판결’

입력
2018.07.19 19:01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초동 대응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는 19일 세월호 유족들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에 나선 유족들은 국가의 책임을 법적으로 판단받겠다며 정부가 지급한 배상금을 거부해 왔다. 이런 이유로 재판에선 배상 액수보다 국가의 책임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너무도 마땅하고 당연한 판결이 내려지는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게 안타깝다. 세월호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게 2015년 9월이니 재판에만 2년10개월이 소요됐다. 그 사이 유족들이 겪은 고통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크다.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거나 출동한 경비정에만 물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목포해경 123정장이 승객 퇴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국가재난컨트롤타워 미작동, 해상교통관제센터의 관제 실패,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 지휘 등은 세월호 사망자들과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까지 총출동해 보고 시간 조작 등 책임을 은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 후 정부는 진상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유족들을 사찰하는가 하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유족들의 소송 제기는 단순히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점을 밝혀 달라는 요구였다. 도대체 국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낱낱이 규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항소 의사를 밝힌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세월호 참사는 남은 이들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숙제를 남겼다. 그러려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세세히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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