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은 ‘생존 사투’… 반려견은 ‘상전 접대’

입력
2018.07.19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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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 극복’ 두 풍경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고시생들 선풍기 하나로 버티기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10㎡ 남짓 자취방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모(27)씨. 최근 젖은 수건을 올려둔 선풍기를 켜고 연일 지속되는 열대야를 버틴다. 밤새 에어컨을 틀자니 냉방병과 감기가 걱정되고, 그렇다고 끄자니 더위에 밤잠을 설쳐 컨디션을 그르칠 것 같아서다. 정씨는 “다음달 있을 필기시험을 시작으로 10월 면접시험까지 준비 중인데,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건강관리의 고비”라고 했다.

고시생들이 무더위를 견뎌내기 위해 ‘여름철 생존비책’을 세우고 있다. 자칫 더위에 지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목표를 그르치기 십상이란 판단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고시생 입장에서 큰 돈을 들여 컨디션 관리에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 ‘저비용 고효율’ 아이디어를 찾아 서로 공유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피로가 풀리지 않을 땐 값비싼 비싼 링거주사 대신 물에 타 먹으면 같은 성분을 보충할 수 있는 ‘링거워터’ 분말을 섭취한다. 눅눅해진 이불을 건조시키기 위해 코인빨래방을 찾는 식이다. 18일 고시촌 골목 코인빨래방에서 만난 김모(29)씨는 “장마철엔 코인빨래방 건조기가 24시간 돌아갈 정도였다”고 했다.

식중독 등 위생 우려 탓인지 고시촌 명물인 ‘컵밥거리’를 찾는 이들도 요즘 줄었다. 초복인 17일 오후 7시쯤 평소라면 고시생들로 붐벼야 할 이곳엔 몇 명만이 서성였다. 컵밥거리 인근 상인은 “여름철엔 건강 걱정 때문인지 길거리음식보다는 고시식당(고시생이 주로 찾는 저렴한 뷔페)을 찾거나, 복날엔 포장 삼계탕 같은 음식으로 보신하는 분위기”라며 “혹서기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컵밥 가게도 많다”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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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견 위해 에어컨 틀고 출근 

서울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장모(30)씨는 요즘 반려견 두 마리가 덥지 않도록 에어컨을 켜둔 채 출근한다. 사람도 지치는 무더위에 의사표현도 못 하는 반려견이 낮 시간 온 집을 메울 열기로 괴로워할까 걱정돼서다. 장씨는 18일 “지난주까지 지속된 장마 땐 제습기를 틀어 놓고 출근한 날도 많다”라며 “전기요금 부담은 있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반려동물이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낮 최고기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지속되면서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의 건강과 컨디션 유지를 돕겠다며 주저 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반려동물인구 1,000만 시대에 걸맞게 ‘반려동물도 사람만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며 동물권(權)을 중시하는 주인이 늘면서다. 사람의 몸 보신용으로 동네 개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과거 이맘때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동물 건강에 좋다는 보신 음식을 찾아 먹이는 등 사람이 동물 여름건강을 챙기는 방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반려묘 두 마리를 키운다는 이모(29)씨는 “고양이들이 기력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 보신 음식으로 알려진 황태국과 닭가슴살을 준다”고 했다. 수십만원대 ‘반려동물용 한약’까지 공수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동물권을 누리지 못하던 ‘시골개’ 사정도 한결 나아지고 있다. 주로 밖에서 생활하는 대형견 체온 유지를 위해 주인들은 동물 활동 영역에 천막을 쳐 그늘을 확보하거나 얼음팩을 두기도 한다.

반려동물교육 전문가 이기우씨는 “에어컨 가동으로 인한 전력 낭비나 과다 지출이 우려된다면 타일이나 대리석처럼 열을 머금지 않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방법”이라면서도 ”한약 등 검증되지 않은 방법은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반려견이 무더위에 시달릴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견이 무더위에 시달릴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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