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영토분쟁] 스페인-프랑스, 360년동안 ‘꿩섬’ 주권 주고받아

입력
2018.07.13 17:00
수정
2018.07.13 17:1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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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스페인의 콘도미니엄인 페장. BBC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와 스페인의 콘도미니엄인 페장. BBC 홈페이지 캡처

영토분쟁을 완벽한 의미로 평화롭게 해결한 사례가 있다면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페장(Faisans)’이다. 한국어로는 ‘꿩섬’ 정도로 번역될 텐데, 이 섬의 면적은 6,820㎡로 길이는 200m, 폭 40m에 불과하다. 유럽 대륙에서 이베리아 반도가 갈라져 나오는 지점인 비다소아강 중간에 있는데, 국제법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이 공동 소유하는 지대이며 그래서 1년에 6개월씩 주인이 바뀐다.

매년 2월에는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 지역의 섬이 되었다가 8월에는 다시 프랑스 바욘(Bayonne) 지역으로 관할권이 바뀐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7월 현재 스페인령(領)인 이 섬은 다음달부터는 프랑스 영토가 된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6개월마다 주권을 주고받는 일을 360년 가까이 거듭하고 있는데, 유럽을 뒤흔든 ‘30년 전쟁’(1618~1648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유럽의 패권을 다투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가톨릭과 개신교 진영으로 갈려 벌어진 30년 전쟁 기간 각각 상대방의 내정에 개입했다.

스페인이 1620년대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개신교 측의 반란을 진압하자 프랑스는 은밀히 스페인 카탈루냐의 반란을 지원했다. 카탈루냐는 지금도 스페인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지역이다. 이에 맞서 스페인도 당시 미성년자였던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통치에 맞서 귀족세력이 일으킨 이른바 프롱드의 난(La Fronde)을 지원했다.

이런 갈등을 끝내는 두 나라 협상이 당시 3개월가량 진행된 곳이 바로 ‘페장’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풀만 우거진 이 섬은 당시에도 ‘중립적인 영토’로 간주됐다. 프랑스ㆍ스페인 관계자들이 각각의 영토에서 건너왔고, 1658년 11월 7일 이곳에서 국경선을 정리하는 ‘피레네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스페인 펠리페 4세의 딸 마리아 테레사와 혼인하는 내용으로 완성됐다.

이런 방식으로 화해를 모색한 프랑스와 스페인은 피레네 조약을 맺으면서 이 섬의 관할권도 확정 지었다. 별로 크지도 않고, 전략적 요충지도 아닌 만큼 양국의 선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6개월마다 주권을 교대하기로 했다. 국제법상으로 다수의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는 지역을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라고 부르는데 페장은 현존하는 콘도미니엄 중 가장 오래됐다.

지금 페장에는 1659년의 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기념비만 있을 뿐 당시 흔적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수세기 동안 피레네산맥의 눈 녹은 물이 유입되면서 섬 자체가 계속 유실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런 유실로 섬의 면적이 최근 100년간 과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양국 정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섬을 관할하는 두 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섬의 보호에 별로 관심이 없다. 또 주권이 바뀌는 시기가 아니면 일반인이 이 섬에 접근하는 것도 어렵다. 양국은 한때 6개월마다 국기를 바꿔 다는 걸 검토했지만, 이 지역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상징하는 깃발을 게양할 가능성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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