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생생과학] 전기 흘리면 냉각ㆍ가열… 온도 차로 전력도 생산

입력
2018.07.07 10: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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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ㆍP형 회로에 전기 공급하면

전자와 양공이 한쪽으로 쏠려

밀도 따라 뜨거워지고 차가워져

한쪽에 열 가하면 전기 발생

차가워진 쪽 냉기를

소형 냉장고ㆍ와인셀러 등에

냉매와 압축기 대신 사용하기도

냉각되는 쪽 습기→ 물로 변해

사막서 물 얻기 위한 연구도

열전 반도체 소자(오른쪽)와 이 소자가 들어간 열전 반도체 모듈. LG이노텍 제공
열전 반도체 소자(오른쪽)와 이 소자가 들어간 열전 반도체 모듈. LG이노텍 제공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는 도체와 그렇지 않은 부도체의 중간쯤 되는 성질을 지녔다. 불순물 첨가 방식과 구조 설계에 따라 다양한 성능을 발휘하는 반도체는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을 똑똑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수많은 반도체 가운데 변방에 머물렀던 ‘열전(熱電) 반도체’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전기를 흘려주면 냉각ㆍ가열이 가능하고, 온도 차이를 이용해 전력까지 생산할 수 있는 신묘한 물건이다.

제베크(Seebeck)-펠티에(Peltier) 효과

열전 반도체의 원리는 약 200년 전인 19세기 초 처음 발견됐다. 독일 물리학자 토마스 제베크(1770-1831)는 1821년 닫힌 회로 양쪽 끝에 온도 차이를 주었고, 회로 근처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것을 관찰했다. 제베크는 온도 차가 자기장을 만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은 전기의 흐름(전류)에 의해 생긴 자기장이 나침반 바늘을 움직였다.

이처럼 두 물체의 온도 차로 전기가 발생하는 게 제베크 효과이고, 열로 인해 생긴 에너지라 열전기

(thermoelectricity)란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 물리학자 J.C.A. 펠티에(1785-1845)는 1834년 정반대의 개념을 설명했다. 물체의 양쪽에 전위 차이(전압)를 주면 한쪽은 뜨거워지고 다른 쪽은 차가워지는 펠티에 효과다.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이 둘은 후대에 ‘제베크-펠티에 효과’로 한 세트가 됐다. 열과 전기의 변환이라 ‘열전(thermoelectric) 효과’라고도 부른다.

N형(여분의 전자가 있어 마이너스 상태)과 P형(전자가 빈 양공ㆍ陽空으로 인해 플러스 상태) 반도체로 이뤄진 열전 반도체는 제베크-펠티에 효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다.

NㆍP형 반도체로 연결된 회로에 전기가 공급되면 펠티에 효과에 의해 전자와 양공이 한쪽으로 쏠린다. 전자와 양공의 밀도가 높은 쪽은 뜨거워지고, 밀도가 낮은 쪽은 차가워진다.

한쪽에 열을 가하면 제베크 효과로 인해 전자와 양공이 이동하며 전기가 만들어진다.

생활 속 열전 반도체

열전 반도체의 차가워진 쪽 냉기를 가전제품에 활용하는 시도는 2000년대 본격화했다. 독일과 일본 가전업체들은 냉매와 압축기(컴프레서) 대신 열전 반도체를 넣은 40ℓ 이하 소형 냉장고를 선보였고 국내에서는 웅진코웨이가 2012년 열전 반도체를 넣은 초소형 냉장고를 개발했다. 현대자동차가 2104년부터 고급차에 적용한 냉온 컵홀더도 같은 기술이다. LG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소형 와인셀러도 열전 반도체 모듈이 있어 가능했던 제품이다. 열전 기술은 데이터 손실을 막기 위해 통신장비의 열을 낮추는 데도 쓰인다.

열전 반도체 재료로는 상온에서 열전 효율이 가장 좋은 물질인 비스무트(Bi)와 텔루륨(Te)을 층상 구조로 배열한 ‘비스무트 텔루라이드’(Bi-Te)가 주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열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대표주자는 독자기술로 나노(10억 분의 1)m 단위의 초미세 다결정 소재 개발에 성공한 LG이노텍이다. 2011년 연구에 착수해 열전 반도체 소재-소자-모듈 기술을 모두 확보한 LG이노텍은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경북 구미공장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 페로텍과 영국 레어드 등이 나노 다결정 열전 반도체 소재를 생산 중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양산하는 기업이 없다.

단결정과 다결정은 소재 단계에서 구분된다. 소재를 만들 때 한 방향으로 한 번에 응고를 시키면 단결정이다. 원자 배열이 규칙적이고 방향이 일정해 열전 특성은 균일하지만 기계적 신뢰도가 낮다. 단결정에는 결합이 약한 부분이 생기는 탓이다. 게맛살을 세로 방향으로 길게 찢어지는 것이 쉬운 이치와 비슷하다.

나노미터 단위의 초미세 결정체들이 복잡하게 결합한 다결정 소재는 단결정보다 강도가 2.5배 정도 높아 진동이 심한 차량이나 선박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LG이노텍은 모듈 최적화로 단결정 대비 냉각 효율을 약 30% 높였다.

열전 반도체는 컴프레서 방식보다 소음이 적고 크기를 최대 40%까지 작게 만들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소음의 경우 컴프레서 방식 소형 냉장고는 29데시벨(dB) 수준이지만 열전 반도체를 쓰면 19dB로 떨어진다. 다만 아직은 소비전력이 컴프레서 방식보다 3~4배 많다. LG이노텍 최고기술책임자(CTO) 권일근 전무는 “다결정을 개발한 것도 소비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2, 3년 더 노력해 모듈 효율을 높이면 많은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물을 만드는 화분과 열전 기술로 공기 중 습기를 물로 바꾸는 원리. 농촌진흥청 제공
스스로 물을 만드는 화분과 열전 기술로 공기 중 습기를 물로 바꾸는 원리. 농촌진흥청 제공

사막에서 물을 만든다면

산업계는 냉각보다는 제베크 효과에 기반한 열전 반도체의 발전(發電) 특성에 관심이 높다.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에서는 1960년대부터 연구가 이뤄져 열전기발생기, 폐열(廢熱) 회수시스템 등이 개발됐다. 열전 기술이 주 에너지원이 될 수는 없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연비감소 모듈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엔진 가동으로 생기는 폐열을 열전 반도체로 보내 전기로 변환하면, 그만큼 연료 소모와 유해가스 발생을 줄일 수 있다. 1.6ℓ 디젤 엔진 차량은 ℓ당 18㎞인 연비가 10% 안팎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나 선박의 폐열 재활용은 열전 반도체의 중요한 활용처다. 연료를 조금만 아껴도 경제적 이익이 크고, 열전 반도체 생산기업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해진다. 2020년부터 강화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대기오염 배출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국내 조선사들은 열전 반도체의 효과적인 적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열전 반도체 테크포럼에서 농촌진흥청 김재순 연구사는 열전 기술을 활용한 ‘물 만드는 화분’을 선보였다. 시중에서 산 단결정 열전 소자에 냉각판과 팬을 합친 단순한 모듈이 결합한 소형 화분이다. 1년간의 연구 결과 하루에 약 30㏄의 물이 저절로 생겨 사람이 물을 주지 않아도 식물은 잘 자랐다.

원리는 간단하다. 열전 소자의 냉각되는 쪽 온도가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면 공기 중 습기가 물로 응축되는 것이다. 하루에 3시간 전기를 연결했을 때 전기요금은 한 달에 약 300원, 6시간 연결하면 700원 정도다. 이 기술을 이전받은 업체들은 물 만드는 화분의 제품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 연구사는 “열전 효율이 높아지면 비닐하우스나 온실 등에서도 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상의 모든 공기는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2008~2017년 우리나라 봄철 평균 습도는 56%, 이슬점은 섭씨 10.4도다. 연중 가장 가문 봄에 고효율 열전 반도체에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공급한다면 공기 중 수분으로 물을 만들어 봄 가뭄을 견딜 수 있다. 바다와 인접해 습도가 높은 사막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사막이나 고산지대의 공기에서 물을 얻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론 단계이지만 열전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는 현실이 될 수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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