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꿀팁] ‘남은 견생도 행복하게’ 호스피스ㆍ완화치료의 7원칙

입력
2018.07.04 14:00
노령견이 늘어나는 요즘, 질병과 함께 견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치료가 증가하는 추세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령견이 늘어나는 요즘, 질병과 함께 견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치료가 증가하는 추세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우리 아이 꼭 좀 살려주세요.”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안타깝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저 말은 동물병원에서도 빈번했던 대화이다. 주로 교통사고나 낙상, 쇼크, 심장병 등 예기치 않게 문제가 생겨 반려견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보호자와 수의사가 나누는 대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얼마나 남았나요??”

만성질환을 가진 노령견의 보호자들이 하는 가슴 먹먹한 질문이다. 보호자로서 당연히 궁금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할 것이다. 몇 백 번 들어봤던 질문이지만 거기에 대한 수의사인 필자의 답변이 항상 정확하지는 못했다. 논문이나 최신 데이터를 확인해 질병에 대한 평균 생존기간을 알려드려 봤지만, 질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터무니없이 빨리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다행히 필자의 예측이 빗나가 장수하는 고마운 환자들도 있다. 

이처럼 노령견이 계속 많아지는 요즘, 질병과 함께 견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치료(Animal hospice and palliative care)가 증가하는 추세다. 반려동물 호스피스·완화치료는 보호자 가족의 요구에 맞추어 반려동물이 죽거나 안락사될 때까지 가능한 최상의 삶의 질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치료 방법이다. 또한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가족들의 심리적의 피로감을 관리하는 것도 포함된다. 반려동물 호스피스·완화치료의 개념은 계속 정립되어 가는 추세이며, 최근은 호스피스 대신 혹은 ‘엔드 오브 라이프 케어(End-of-Life(EOL) care)’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보호자와 수의사의 ‘합심’이 중요 

척추디스크와 만성비염을 앓고 있는 16세 진도견 오공이는 보호자의 적극적인 돌봄과 병원에서의 관리 치료를 받고 있다.(사진은 오공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척추디스크와 만성비염을 앓고 있는 16세 진도견 오공이는 보호자의 적극적인 돌봄과 병원에서의 관리 치료를 받고 있다.(사진은 오공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오공이(가명)는 척추디스크와 만성비염을 앓고 있는 16세 진도견이다. 사람 나이로는 90세 정도(중대형견 기준)되는 노령 환자인데, 17kg 정도 되던 체중이 최근에는 10kg 정도까지 감소했다. 혼자 힘으로 기립을 못한 지 반년 이상 되었고, 현재는 노화로 인한 치매 증상(인지장애)까지 발생해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오공이가 나이가 들고 불편한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오공이의 보호자 덕분에 오공이는 현재까지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배뇨는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서 외부에서 방광을 짜주는 압박 배뇨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처럼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아주 잘게 만들어서 먹여주거나, 좋아하는 고구마 또는 액상 유동식을 보호자가 직접 급여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디스크에 대한 진통 치료, 레이저 물리치료, 비염에 대한 호흡기 분무 치료를 통하여 통증과 불편함을 줄이는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오공이가 너무 기력이 떨어진다고 하여 급하게 병원으로 내원을 했는데, 검사 결과 탈수증상이 심하여 발생한 ‘고나트륨혈증(Hypernatremia)’으로 진단되어 수액치료를 받고 퇴원하였다. 오공이의 경우처럼 필요시 동물병원으로 내원하여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또 한고비를 넘길 수 있으니, 만성질환을 가진 노령견들은 상시 주치 수의사와 환자의 상태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코카스패니얼종 13세 홍이는 심장약 투약으로 증상을 관리하고 있다. 얼마 전 악성종양으로 수술을 받아 현재는 안면부 통증 관리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사진은 홍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코카스패니얼종 13세 홍이는 심장약 투약으로 증상을 관리하고 있다. 얼마 전 악성종양으로 수술을 받아 현재는 안면부 통증 관리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사진은 홍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완화치료의 두 번째 사례는 코카스패니얼종인 13세 홍이(가명)이다. 홍이는 평소에 심장질환(판막질환, 폐성고혈압)을 가지고 있는 환자로 과호흡과 기침 증상을 보였으나 심장약 투약으로 증상이 잘 유지되고 있던 환자였다. 그런데 지난달 안면부 좌측이 조금 붓는 증상이 발견되었고, 조직 검사 결과 연골에서부터 악성종양이 퍼진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홍이의 경우 종양이 커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고, 안구 뒤쪽부터 증식하는 종양이 급기야 왼쪽 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각막에 궤양이 생겼고 안구 돌출까지 확인되었다. 결국 홍이 가족들과 내·외과적인 치료 방향을 설정한 뒤, 불편함을 주고 있는 좌측 안구는 적출하기로 하고 악성종양도 어느 정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다.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확인했을 때, 안면부 근육에 종양이 많이 퍼져 있어서 종양을 완전 절제할 수는 없었다. 

안구적출술 이후 안면부 통증은 많이 개선되었으며 현재는 수술 부위에 대한 관리와 진통 치료, 적절한 영양공급과 수액치료를 통하여 홍이의 남은 수명을 편안하고 아프지 않게 유지할 수 있게 치료를 하고 있다. 씩씩한 홍이는 음식을 좀 가리기는 하지만 요즘은 오리로 된 육포 간식을 잘 먹고, 단호박도 즐겨먹는다. 현재는 홍이의 통증관리가 잘 되고 있어 보호자도 만족하는 편이다.

 호스피스ㆍ완화치료 체크리스트 

반려견의 호스피스·완화치료에 대한 해외의 문헌들을 검토해 보면 일곱 가지 관점에서 삶의 질(Quality-Of-Life)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길 추천한다.

호스피스·완화치료를 받는 노령견들은 7가지 측면에서 삶에 질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길 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완화치료를 받는 노령견들은 7가지 측면에서 삶에 질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길 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1. 부상(Hurt)이다. 호스피스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은 자발적인 움직임이 없는 편이 많아서 욕창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하고 상처가 잘 회복되지도 않는다. 상처 관리를 통하여 보다 나은 생활을 기대할 수 있다. 

2. 배고픔(Hunger)은 적절한 영양공급이 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다. 환자가 배고픔을 호소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도 적절한 영양공급을 해주는 것은 필수이다. 

3. 수분 공급(Hydration) 상태도 삶의 질의 척도이다. 노령견이 되면 신장의 수분 재흡수 기능이 떨어지며 만성 탈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신선한 물의 공급도 꼭 신경을 쓰자. 

4. 위생(Hygiene)도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다. 대소변이 환자의 몸에 묻어 있거나, 식사 후 입 주위에 음식물 찌꺼기와 침, 그리고 눈 주위에 오래된 눈곱이 계속 붙어 있는 것은 아픈 반려견에게도 불쾌한 일이다. 

5. 행복(Happiness)은 비록 몸 상태는 건강했던 젊은 시절과 다르지만 가족과의 교감과 터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반려견들을 행복하고 안락하게 해 줄 수 있는 요소이다. 

관절이나 신경 문제로 반려견의 움직임이 불편하면 보호자가 도와주거나 재활보조기를 사용해 움직임을 도와줘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관절이나 신경 문제로 반려견의 움직임이 불편하면 보호자가 도와주거나 재활보조기를 사용해 움직임을 도와줘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6. 운동성(Mobility)도 삶의 질을 위하여 중요하다. 반려견이 관절이나 신경계의 문제로 거동이 어려우면 보호자가 도와주거나 재활보조기의 사용 등을 통하여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게 해 줄 수 있으면 좋다. 

7. More good days than bad(좋은 날들이 많을수록 더 좋다). 말 그대로이다. 위 사례의 환자들처럼 나이가 너무 많고, 무서운 병이 있어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환자들도 결국은 지금의 상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증상을 완화시키고 통증을 줄여주고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경험적으로 반려견의 호스피스·완화치료는 보호자와 동물병원의 의료진이 모두 합심하여 고민을 할 때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찾아낼 수 있었다. 

노령의 반려동물은 우리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생활해온 가족구성원이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부분이라도 적절한 관리와 치료, 그리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남아있는 반려견의 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며 현재 우리 아이의 질병에 대한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들이 동물병원과 수의사에겐 반드시 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남았나요?’라는 질문에 이제는 ‘XX 일 남았습니다’보다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와 관리 방법을 알려드리며, 환자가 호스피스·완화치료를 통하여 얼마나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더 전달해 드려야 하겠다. 


김태호 수의사(이리온 동물병원 청담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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