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아까시나무

입력
2018.06.19 11:34
수정
2018.06.20 11:03
29면

꽃은 말이 필요 없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꽃은 신에게 속해 있다고 보았고, 중세 빅토리아 사람들은 모든 꽃에 의미를 부여하며 말 대신 감정을 표현했다. 우리 선조는 꽃과 나무에 삶의 덕을 부여하고 칭송했다. 최근에 건강과 관련하여 산을 찾는다. 우거진 숲에 들어갔을 때 특유의 시원한 산림향이 풍기는 것은 피톤치드(phytoncideㆍ식물이 내는 향균성 물질)가 심신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초여름에 접어들면 아까시나무에는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달린 작은 흰 나비를 닮은 하얀 꽃송이들의 향기가 진하다. 꿀풀(하고초)처럼 꽃에 꿀이 많이 나와서 일명 ‘꿀벌나무(Bee tree)’라 부른다. 꿀벌들은 부지런히 꽃을 찾아 아까시나무의 꿀샘을 찾아 채밀(採蜜ㆍ꿀을 뜨는 것) 활동을 한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꿀샘 있는 부분이 진한 색이라 벌이 찾아오고 꿀을 가져가기에 좋게 되어 있다. 꽃 1개에는 하루 평균 2.2㎕(1㎕는 100만분의 1ℓ)의 꿀이 생산된다. 중요한 밀원(蜜源ㆍ꿀의 원천이 되는 식물)수종으로 양봉 농가에 도움을 준다. 한 때 국내에서 생산되는 벌꿀의 70% 이상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아까시나무의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사랑’이다. 동요 ‘과수원 길’ 노랫말처럼 유년 시절 추억, 향기로움과 함께하는 생활 속의 나무다. 잎이 가지런히 마주나 있어서 어린 시절 같은 숫자의 잎을 따서 가위바위보를 번갈아 하며 잎 떼기 놀이를 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며 경험하는 사람살이처럼 나무가 겪는 아까시나무살이에도 애환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심어진 나무, 베어내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인해 생태계를 교란한다 하여 미움을 받았던 나무, 6ㆍ25전쟁 이후 헐벗은 민둥산을 가꾸려는 목적으로 전국 곳곳에 심었던 나무였다. 또한 꿀이 많고, 아름답고, 향기가 좋고, 용도가 많은 추억 속의 나무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품종이 있다. 1890년 일본 사람이 중국 북경에서 묘목을 가져와 우리나라에 처음 심었고, 1920년경에는 연분홍 꽃이 피는 꽃 아까시나무를 미국에서 들여와 전국에 심었다. 그 시절 황폐했던 산이 워낙 많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살린 사방용 지피식물로 전국적으로 많이 심게 되었다.

아까시나무는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가치가 높다. 배가 고플 때는 주렁주렁 달린 꽃송이들을 한 움큼씩 먹었다. 잎은 나물이나 떡ㆍ샐러드로 먹었고, 바비큐 같은 훈제요리에도 사용된다. 다 자란 잎은 살짝 찐 다음, 손으로 비비면서 말려 차로도 마신다. 잎은 이뇨와 신장에 좋고, 뿌리껍질은 변비나 오줌소태에 효과가 있다.

아까시나무가 올해 냉해와 꽃대 발생 불량, 엽록소 부족으로 인하여 잎이 노랗게 변하는 황화현상이 전국적으로 발생해 꿀 수확에 ‘빨간 불’이 켜졌다. 2004년 아까시나무가 전국적인 황화현상으로 고사하면서 최악의 꿀 작황을 기록한 것처럼 올해 발생 현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꽤 심각한 수준이다.

사람은 오랜 세월을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아까시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어린 시절 삶의 언저리에는 항상 나무가 있었고, 그런 나무는 우리들의 삶에 희망과 위안을 주고 추억을 간직하게 했다. 시민은 건강을 위해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을 통해 산림치유를 즐길 권리가 있다. 산불에 탄 숲 회복에는 100여 년이 걸린다. 이제 나무를 심는 것보다 숲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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