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추자도의 바람이 말했다

입력
2018.05.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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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남쪽으로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고 서쪽에는 가장 젊은 화산인 비양도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우도가 있다. 그렇다면 북쪽으로는? 언뜻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제주도 북쪽에도 커다란 섬이 있다. 추자도가 바로 그것. 육지에서 본다면 추자도가 제주도의 시작점이다.

추자도 역시 한 개의 섬이 아니다. 다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그리고 횡간도와 추포도를 포함하는 4개의 유인도를 38개의 무인도가 점점이 둘러싸고 있어서 풍광이 마치 남해 바다의 다도해처럼 아름답다.

제주항이나 전라남도 해남 우수영에서 떠나는 배를 타면 추자도에 들어갈 수 있는데, 육지보다는 제주도와 조금 더 가깝다. 하지만 생활문화는 전라도에 가깝다. 음식은 확실히 젓갈이 많이 들어간 전라도 음식이다. 제주 사람도 추자도 음식이 맛있다고 한다. 추자도의 조기젓은 밥도둑이다. 지금은 한라산 소주를 마시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해소주를 마시던 곳이다.

자연환경도 제주도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돌이 다르다. 제주도의 현무암을 볼 수 없다. 담장은 주로 화강암으로 쌓았다. 면사무소 앞의 현무암 돌하르방이 어색해 보일 정도다. 남측에는 거대한 암벽 절벽이 있지만 주상절리는 아니다. 화산도가 아닌 것이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섬휘파람새와 두견이 많지만 흑비둘기와 슴새는 추자도에 속하는 무인도인 사수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바다에는 돔도 많지만 제주와 달리 멸치와 학꽁치가 풍부하다. 돌조기라고 불리는 추자도 참조기가 특산물이다. 우리나라 조기의 3분의 1이 추자도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추자도는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제주해역을 거쳐서 오는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쓰시마 난류의 영향을 받아서 겨울에도 바닷물의 온도가 많이 낮지 않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이면서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깊고 바닥이 암반층이라 물이 깨끗하다. 참조기가 산란장으로 선택하기에 딱인 것이다.

인구가 채 2,000 명도 안 되는 추자도에 무려 85명의 과학자가 활동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사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 동안 추자도의 종다양성을 조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의 한국사무국인 국가종다양성기관연합(KBIF)에는 국립중앙과학관, 천연기념물센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서울시립과학관 등 55개 주요 과학기관이 속해 있는데 이 가운데 25개 기관에서 곤충학자, 조류학자, 해양생물학자, 미생물학자, 생명종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와 지질학자를 보냈다.

KBIF는 백령도, 울릉도, 태안, 강화도, 여수, 경주, 제주 등 섬 또는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10년 주기로 생물종다양성을 조사하고 있다. 이것은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국가적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탐사 연구의 일환이다.

올해는 무려 23번째와 24번째 탐사를 추자도에서 하고 있다. 추자도는 매년 5만 명의 관광객이 오는 명소지만 생물종다양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추자도에서는 1985년과 2003년 이후 무려 16년 동안이나 종합적인 생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이번 곤충학자로서 학술조사 단장을 맡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정세호 관장은 “추자도는 바람이 허락해야 들어올 수 있는 섬인 까닭”이라고 말했다.

학술조사단이 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올레 18-1길 주변에 있는 식물을 동정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추자면장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1년에 5만 명의 관광객이 오지만 바다와 섬의 풍광에만 감탄할 뿐 섬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는 별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추자면장의 말에 동의했다. 앞으로 올레 18-1길 주변에는 나무와 꽃마다 명패가 붙을 것이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낸 생명다양성재단의 최재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앎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면 표현하게 되는 게 자연이다.

2006년 경주와 백령도 조사로 시작된 KBIF 공동학술조사는 처음에는 해가 지날수록 팀워크가 좋아지고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처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고용불안이었다.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은 선배 과학자들과 달리 새로운 세대는 대개 비정규직이었다. 젊은 연구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기관을 옮겼고 팀워크는 지속되지 못했다. 작년 여수 탐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올해 추자도 공동 학술조사단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명랑해졌다. 걱정은 육지에 모두 두고 온 것 같다. 분위기가 왜 바뀌었을까? 1년 사이에 비정규직이었던 연구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자도의 바람이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자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생물종다양성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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