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콜옵션 가능성만으로 자회사 지배력 상실 판단은 잘못”

입력
2018.05.21 04:40
16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감리위원회에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인 김학수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감리위원회에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인 김학수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동투자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행사 가능성만으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회계처리 방식을 바꾼 게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심의하는 회계감리위원회(이하 감리위)에 회사 측의 회계 분식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는 100페이지를 훌쩍 넘지만 금감원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에 대한 투자를 늘려 9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만으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건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17일 열린 1차 감리위에서 2015년 말 자회사인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고 판단해 기업가치 평가 방식을 바꿨다는 삼성바이오의 주장에 대해 지배력 상실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정황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앞세워 공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7월 에피스가 개발한 복제약이 유럽에서 무난히 판매 승인을 얻을 걸로 예상(실제 2016년 1월 판매승인)하고 미국 나스닥 시장에 에피스를 상장할 계획을 발표한다. 그 해 11월 삼성바이오와 함께 에피스에 투자한 미국 회사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 “나스닥 상장시 가격 조건이 맞으면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의 의향서(레터) 보낸다. 바이오젠은 당시 에피스 지분을 8.8%만 갖고 있었지만 보유 지분을 삼성바이오로부터 사들여 2018년까지 49.9%까지 늘릴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었다. 삼성바이오는 이 레터를 근거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지면서 바이오젠이 보유한 ‘잠재적’ 의결권이 실질 권리로 바뀌었다고 봤다. 에피스에 대한 자사의 지배력이 상실됐다고 본 것이다. 회계기준상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면 자회사 가치를 기존 취득가액에서 시장가액으로 평가해 장부에 반영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가 보유한 에피스 가치가 기존 2,900억원에서 2015년 말 4조8,000억원으로 뛴 배경이다. 그러나 2016년 1월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이 물거품이 되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도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됐다.

금감원은 당시 삼성바이오가 내린 일련의 판단 과정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바이오젠이 특정 시기까지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식으로 의사를 명확히 했으면 모를까, ‘가격 조건이 맞을 경우 행사하겠다’는 조건부 의사 표시를 했을 뿐인데 삼성바이오 측이 이를 무리하게 지배력 상실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바이오젠이 레터를 보내기에 앞서 삼성바이오가 먼저 콜옵션 행사를 바이오젠에 요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삼성바이오가 에피스 지분율을 기존 85%에서 91.2%로 늘려온 상황임을 감안할 때 삼성 측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리는 감리위원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에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리는 감리위원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에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는 금감원 논리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회계기준엔 투자자가 콜옵션과 같은 권리를 행사해 실익을 얻을 거라고 판단될 땐 투자자의 권리 행사를 가정해 지배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삼성바이오는 당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실제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이 규정을 들어 자회사 회계처리 기준을 바꾼 것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가 먼저 콜옵션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목에 대해선 “나스닥 상장 과정에서 2대 주주인 바이오젠과 상장 방법을 논의했을 뿐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25일 열리는 2차 감리위는 재판 방식의 대심제로 진행돼 이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상당히 치열할 걸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학과 교수는 “국제회계기준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감리위도 회계기준 준수 여부보단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고의성 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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