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폐기를” 미국 떠미는 이스라엘

입력
2018.05.01 16:50
21면

네타나후 총리 방송 기자회견

“이란 거짓말 증명할 파일 확보”

트럼프 제재 재개 끌어내려 ‘쇼’

시리아 주둔 이란 민병대 폭격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월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이 핵 개발 계획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도중 허리를 굽히고 있다. 텔아비브=EPA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월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이 핵 개발 계획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도중 허리를 굽히고 있다. 텔아비브=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소위 이란 핵 협상이 재협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이란에 대한 제재 유예를 중단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후 별다른 상황 변화 없이 재협상 시한으로 설정된 5월 12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중재를 시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유예 중단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다. 이란 또한 미국의 의무 이행이 없으면 협상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이라 이란 핵 협상은 붕괴 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이 가장 즐거운 인물은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다. 1990년대 이래 이란을 사실상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온 이스라엘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에 대한 공세적 중동 정책 바람을 타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란이 핵 협상을 어겼다’며 대대적 선전 활동을 벌이는 한편, 시리아에 주둔 중인 이란 민병대를 미사일로 공격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황금 시간대에 프레젠테이션까지 동원한 방송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핵 개발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란 핵 문서가 담긴 서류 5만5,000장과 CD 183개를 늘어놓고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올해 1월 이란이 공개하지 않은 핵 개발 계획을 찾아냈다. 이를 증명하는 10만개의 비밀 파일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공개된 내용은 이미 기존에 서방에 알려진 것으로, 오히려 2015년 이란 핵 협상 타결의 근거가 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공개한 자료는 과거 이란 핵 개발 계획의 핵심 인사로 알려진 모센 파크리자데 테헤란대 물리학과 교수가 지휘한 ‘프로젝트 아마드’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200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밝혔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일종의 ‘쇼’를 벌인 이유는 결국 오는 12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제재 재개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협상을 폐기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라며 “이란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라 그의 결단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즉각 맞장구를 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를 언급하며 “내가 100% 옳았다는 점이 진실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스라엘이 공개한 문서는 정확하고 많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라며 “핵 협상은 이란의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지를 확신하는 이스라엘은 최근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 이란 정부가 지원하는 친 시리아 정부 군사시설에 수시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도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공격으로 시리아 서부 제27여단 주둔지에서 활동 중이던 이란인 민병대원 26명이 전사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