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시 한 송이] 한모금씨 이야기

입력
2018.04.05 17:39
29면

한모금 어린이는 한 모금과 일치하였지요. 잠든 새들의 머리에 다른 색을 칠하거나 파마를 해주는 마법을 부렸지요. 한 모금이었으므로 새들의 작은 머리를 볼 수 있었지요. 잠에서 깨면 다른 새가 되어 있었으므로, 새들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물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더는 필요 없어요. 나는 한 모금만 필요해요.

어린이 한모금은 자라서 한모금씨가 되었지요. 한 모금의 비밀을 잊지 않아서 여전히 한 모금과 일치하였지요. 몸집은 새의 80배나 되었지만 새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그의 새처럼 작은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80배나 큰 몸집으로, 마찬가지로 새의 80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앉으려고 애썼지요. 그들도 새처럼 작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한 캔이 있어도 한 모금씩 마셨으니까요.

비단 찢어지는 소리는 가슴이 찢기는 소리죠. 그러나 가슴의 두근거림이 두려움보다 용기가 적었다는 의미는 아니죠. 한 캔이나 한 잔이 되지 못하다니, 세상의 한잔씨들은 말했지요. 그러나 나 한모금은 한 모금의 마법을 잃지 않았어요. 뾰족한 발톱과 새의 심장은 한 모금이에요. 한모금씨는 여전히 한 모금만 필요해요. 앞머리를 흔들어 색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되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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