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근 칼럼] 발상의 전환 절실한 사교육 대책

입력
2018.03.27 15:10
30면

 사상 최고치로 다시 치솟은 사교육비 

 공교육 정상화가 과연 근원적 대책? 

 범정부 차원의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교육부와 통계청이 2017년 사교육비 통계를 발표했다.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의 여파로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 총 규모도 2년 연속 증가했다. 부모들이 한두 명에 불과한 자녀의 사교육에 갈수록 더 경쟁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통계를 발표하면서 공교육 정상화가 사교육 문제의 근원적인 대책임을 밝히고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을 천명했다. 교육부가 공교육 정상화에 힘쓰겠다는 건 바람직하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교육 정상화가 사교육 문제의 근원적인 대책이라는 점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사교육 문제의 배경과 본질을 너무 단선적으로 이해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우리 사회에선 가정배경이 양호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사교육 참여에 더 적극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사교육 수요가 주로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기 위한 목적에서 창출됨을 의미한다. 선행 학습 성격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과목 간에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사교육이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한 지렛대로 이용되는 상황에서는 공교육 내실화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학교에서 학생들이 평균 60점 수준의 성취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자. 교사들이 새롭게 사명감을 갖고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을 실시한 결과 학생들의 평균 성취도가 90점까지 높아진다면 사교육 수요가 감소하게 될까? 해당 학교에서 사교육을 찾는 학생 대다수가 부실한 수업 내용 때문이었다면 사교육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고자 사교육을 찾았다면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전체적으로 성적이 크게 오르면서 성적 부진 때문에 경쟁에 나서지 않는 학생들이 크게 줄어 이전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위협받게 된 다수 학생이 사교육 참여라는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이 번창하는 핵심 원인을 공교육의 실패에서 찾게 되면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심장 기능 이상으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하고 머리에 찜질만 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교육 경쟁은 사람들의 상승 열망과 사회의 기회구조 간 커다란 간극이 유발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고도 성장기에 배태된 상승 열망은 지난 수십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면 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기회구조는 악화 일로에 있다. 날로 심화하고 있는 청년실업과 양극화가 특히 문제다. 이 때문에 상승 열망 충족의 관건이라 여겨지는 대입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사교육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사교육비 경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발상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전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교육비 경감이 난망임을 직시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만으론 여러모로 역부족이다. 계층상승 통로를 다변화하고 대학 진학 및 입직 단계의 병목 현상을 크게 완화하는 게 급선무다.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패자에게 응당한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적어도 생존의 위협에선 자유로울 수 있게끔 사회안전망도 확충해야 한다.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교육부가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교육부에만 지우는 건 온당치 않다. 사교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부가 마치 비책이라도 지닌 양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서는 것 또한 딱하긴 매한가지다. 저출산 문제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사교육비 경감은 백년하청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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