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사색] 미안해요 베트남

입력
2018.03.18 15:31
30면

월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 상처 치유 안돼

수교 25주년 맞아 베 공식방문 문 대통령

사과 어렵다면 한ㆍ베 합동조사위 꾸리길

다낭. 세계최고의 해변을 자랑하는 중부베트남의 휴양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최근 최고인기휴양지로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이 아름다운 비치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여러 마을들에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기억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20일 전 30년간의 교수생활을 끝냈습니다. 송별 관련 행사들로 몸과 마음이 지쳐 모든 것을 잊고 좀 쉬다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낭을 선택했습니다. 여행준비를 하던 중에 한ㆍ베트남 평화재단이란 민간단체를 돕고 있는 의사친구가 재단에서 "한국군의 ‘하미학살 50주년 위령제’ 참석차 다낭지역을 찾는 평화기행을 조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정년퇴임 휴식여행인 만큼, 특히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으로 투옥ㆍ제적ㆍ강제징집을 당했고 전두환 덕분에 기자를 그만두고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된 뒤에도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이번만은 무거운 여행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버릇 못 버리고 이에 합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퇴임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제 생애 가장 슬픈 ‘눈물과 고뇌, 그리고 참회의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제가 한국군의 행적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지 마을, 마을에서 마주친 학살의 현장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50년 전인 1968년 3월 하미마을에서 목숨을 잃은 135명의 주민들을 비롯해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였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으로 문제가 됐지만,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목숨과 피를 바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그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할 때, 학살피해자 못지 않게 그들 또한 베트남전의 희생자들입니다. 나아가 베트남전 참전의 의미에 대해, 민간인 학살의 정황과 학살의 진위에 대해, 많은 논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두살 먹은 어린이들까지 희생된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요? 이들이 베트콩이었을까요? 아니면 이 사건을 한국군의 소행으로 만들기 위한 북한의 공작이었을까요?

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저에겐 아직도 이번에 만난 한 여인의 울부짖음이 생생합니다. 8살 때 엄마와 오빠, 동생 등 일가족을 잃고 자신도 총을 맞았지만 살아남은 응우엔 티 탄은 죽기 전에 한국군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합니다. “나도 죽여 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지, 왜 부상만 입혀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만들었나요?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꼭 3살 난 내 동생도 죽여야 했고 8년 산 나에게 총을 쏴야 했나요?”

문 대통령이 이달 말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특히 이번 방문은 한ㆍ베트남 수교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역사적 방문인 만큼, 그리고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촛불대통령’의 방문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사과하기에 최적기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사과를 하기로 이미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리고 참전군인과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의 반발을 고려할 때 이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문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공식사과를 못한다면, 최소한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정부관계자들과 참전군인, 전문가, 시민운동가를 포함한 한ㆍ베트남 합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같이 진상을 조사하자고 제안해 줬으면 합니다. 그것이 현 단계에서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참전군인들 역시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끊임없이 반성해온 독일과 달리 ‘전쟁 성노예’ 문제 등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사를 부정해온 일본을 무수히 비판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독일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운 일본의 길을 갈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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