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제주의 섬들도 바다도 내 것이니까

입력
2018.03.17 10:00
아직은 불편한 제주…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의 차이에 적응하는 중.
아직은 불편한 제주…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의 차이에 적응하는 중.

여행은 사실 불편하다. 이 ‘불편’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낯섦에 날 던져버려야 한다. 그 낯섦 때문에 모르고, 맘대로 안되고, 그러기에 답답한 상황이 계속된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온다. 그간 쌓아온 이성으로 쉬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과도 맞닥뜨린다. 반대로 생경하기에, 예상치 못한 환희도 불어 닥친다. 처음 맛본 ‘제주살이’가 딱 그랬다.

장롱 면허의 음지 탈출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아빠의 수동 차량을 몰 생각으로 딴 2종 수동용이었다. 가족을 태우고 야심 차게 고속도로를 탔다. 부드럽게 기어를 넣고 우회전하는 것에 신경 쓴 나머지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지 못했다. 일가족이 몰살할 뻔한 그날 후 나의 면허는 장롱에 잘 모셔졌다. 8년이 흘렀다. 칙칙한 면허에도 해 뜰 날이 왔다. 제주에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애월의 농가주택은 외부와 단절된 곳은 아니다. 2분만 걸으면 편의점을 비롯해 카페, 레스토랑 등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있다. 이사오기 전까지 여행자의 눈에선 편해 보였다. 살아보니? 천만의 말씀이다. 문방구를 들리더라도, 병원에 가야 할 순간도, 장이라도 한 번 보려면 차를 끌고 나가야 했다. 물론 버스를 탈 수도 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진 약 1km 떨어져 있다. 15분이라 걸을 만하지만 배차 시간이 더 문제다. 정류장에서 20분 기다리는 건 참 은혜로운 일이다. 버스노선은 내가 원하는 곳을 쉽게 비켜나간다. 결국 바게트 하나 사려고 해도 시동을 건다. 부릉부릉.

장롱 면허의 생존을 위한 드라이브는 시작됐다. 밀려드는 차에 손바닥엔 땀이 주룩주룩.
장롱 면허의 생존을 위한 드라이브는 시작됐다. 밀려드는 차에 손바닥엔 땀이 주룩주룩.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시내로 술 마시러 가는 날 뿐.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시내로 술 마시러 가는 날 뿐.

제주시와 서귀포시, 서울과 부산 사이?!

처음 짐을 옮길 당시 이삿짐센터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알아요? 제주시와 서귀포시 사이는 육지 사람이 느끼는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와 맞먹어요.” 엥? 허풍이 심하군. 제주도 면적은 1,845㎢, 서울보다 약 3배 크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대략 50km이니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제법 긴 주행인 서쪽 한경면과 동쪽 성산일출봉 사이는 2시간 남짓한 거리다. 서울과 부산 사이는 약 400km, ‘쨉’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심리를 뛰어넘지 못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 상의 제주는 살면서 점점 더 커진다. 서울에서 ‘멀다’ 정도면 제주에선 ‘너무너무’ 멀고 멀다. 제주도민은 서귀포시에 산다는 이유로 제주시로 넘어오는 것을 꺼린다. 큰 맘 먹어야 간단다. 한 술 더 뜨는 양반도 허다하다. 애월에 들르면서 “내가 (무려) 제주시내에서 넘어 온 거라고요!”라며 생색을 내는 도민도 보았다. “애월읍도 (나름) 제주시인데요”란 변명은 먹히지 않았다. 제주에 산 지 2개월이 지난 뒤 깨달았다. 집에서 고작 13km 떨어진 공항으로 친구를 픽업하러 갈 때조차 ‘우리가 그 사람을 참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달려간다는 것을.



자연과 함께 삶이 굴러간다

언제였을까.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던킨도너츠의 ‘허니후리터’가 몹시 당겼다. 제주 시내에 가야 맛볼 수 있는 너란 애증의 도넛. 살면서 상상력 하나는 기똥차게 풍부해지겠다. 별자리처럼 허니후리터를 이어 그리고 입맛만 쩝쩝 다셨다. 도넛의 달콤함은 없지만 쏟아지는 별의 신비로움은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유난히 눈(雪)의 신이 자주 강림했던 2월. 돌하르방님, 오늘 서귀포에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유난히 눈(雪)의 신이 자주 강림했던 2월. 돌하르방님, 오늘 서귀포에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주 날씨는 애당초 믿을 게 못 된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 어느새 뭉게구름이 “안녕!”
제주 날씨는 애당초 믿을 게 못 된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 어느새 뭉게구름이 “안녕!”
발가락이 아려오는 엄동설한에도 새싹이 돋는 곶자왈. 그로부터 희망을 표절한다.
발가락이 아려오는 엄동설한에도 새싹이 돋는 곶자왈. 그로부터 희망을 표절한다.
숨이 깔딱 넘어가는 고개가 곧 정상인 새별오름. 바람의 사나이가 하늘을 날 준비도 한다.
숨이 깔딱 넘어가는 고개가 곧 정상인 새별오름. 바람의 사나이가 하늘을 날 준비도 한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는 일은 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 일이다. 더불어 공식적인(!) 날씨도 체크한다. 이 데이터와 체감상 날씨를 바탕으로 오늘을 꾸린다. 하루 할당된 일은 있지만, 날씨에 따라 스케줄이 전격 조종된다. 맑은 날이라면 나갈 궁리부터 한다. 내키지 않으면 마당에 비치 의자를 펼쳐놓고 볕 아래 책을 읽는 신선놀음을 한다. 비나 눈이 오면 집에 박제되어 며칠 치 일을 몰아 한다. 열일 모드의 자연 전환이다.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은 서울에선 없던 버릇이었다. 포기할 법도 한데 하루에 10번도 더 바뀌는 제주 날씨에 오히려 스펀지처럼 빠져든다. 날씨에 따라 우리의 기분도 오르락내리락 변덕을 부렸다.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건가. 한 선배는 계절에 민감해지는 건 나이 탓이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쩝, 어쩌면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연과의 지리적 거리는 퍽 가까워졌다. 심리적으로 멀던 그 거리도 지척이다. 마당으로 나서면 돌담 너머 마농(제주어로 마늘)밭, 히아신스가 바람에 따라 막춤을 춘다. 그림자가 자리를 옮겨간다. 서울에서 익숙한 빌딩의 각진 ‘정형’은 수시로 변하는 ‘무정형’으로 치환된다. 뒷마당에조차 새 생명이 피었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민들레가 고개를 내민다. 먼 발치에 여전히 하얀 모자를 쓴 한라산 정상이 웃고 있다. 새벽 경매 어판장의 활력을 취하려 한림항으로, 가슴 터지는 산책을 하고 싶어 새별오름으로, 삶의 좌표를 찾고자 곶자왈로, 때론 해안도로를 따라 바람을 이기며 자전거 바퀴를 굴린다. 어딘가에 굳이 가려고 맘 먹지 않아도 바다가, 하늘이, 숲이, 꽃이 내 곁이다. 마음 속이다.

이 낙조가 바로 제 겁니다. 여러분 것이기도 하죠.
이 낙조가 바로 제 겁니다. 여러분 것이기도 하죠.

“다 내 거라고 생각하면 좋잖아요? 차귀도도 내 것, 형제섬도 내 것. 저 앞바다도 내 것인 거야. 꼭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건가? 마음에 담으면 되지.” 그렇다. 어느 제주도민의 충고에 그날 밤, 우린 주체할 수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연이라는 로또에 당첨되었구나!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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