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의 우충좌돌] 괴물과 피해자의 힘

입력
2018.02.20 14:37
30면

‘문학권력’의 성추행은 기득권의 갑질

문학적 성과도 권력구도 산물 아닐까

눈앞의 악조차 멍하니 보고 있어서야

‘괴물들’이 여성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을 실명으로 고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다음에 시인 최영미가 ‘괴물’이란 시에서 “성추행하는 괴물”에 대해 썼다. 그 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곧 고은이 바로 그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는 괴물”임이 보도되었다. “술 먹고 격려하느라 그랬다”는 설명은 말이 안 되는 수치스러운 변명이다. 또 극단 ‘미인’ 대표인 김수희가 연희단거리패 연출가 이윤택을 고발하였다.

문학비평을 하면서 문학판에 몸을 담갔던 나도 간접적으로 고은의 ‘나쁜 버릇’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기껏해야 혀를 차거나 한심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무성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몇 십 년 동안이나 그 사실이 문학판에서 묵인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더욱이 이십여 년 정도 그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물론 개인적 잘못 때문에 작품 전체를 매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원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의 권위나 권력을 통한 성추행은 사적인 실수나 잘못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시대에 권력과 기득권에 의한 성추행ㆍ성폭력과 갑질은 다른 어떤 것보다 추악한 잘못임이 분명하다. 과거보다 성추행에 대한 판단이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시절이라고 그것이 그저 묵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물음이 또 있다. 상습적 성추행범이 노벨상 단골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럼 그가 노벨상 단골후보로 거론된 것은 순전히 작품성 덕택일까? 그렇게 오래 단독으로 한국의 대표 작가로 해외에 소개될 만큼 그의 문학이 독보적인가? 의심스럽다. 그를 지속적으로 추대한 그룹이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시는 과도하게 기념식을 장식하고 누리는 스타일이다. ‘한국 대표작가’ ‘노벨상 단골 후보’라는 타이틀도 문학판 내부의 수상한 ‘정치’와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면이 크다. 결국 문학하는 사람들 모두 그것을 묵인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문학판의 기괴한 잔칫상이 차려진 다음엔, 대중매체가 큰 숟가락을 올렸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이 정신적 권위를 잃고 있기에, 거기에 칼을 겨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 시대에 그것의 쇠퇴를 대면하는 일은 슬프다. 그러나 그들이 누렸던 상징성과 초월성이 사라지는 과중에서 바로 그들의 허언과 부실함이 드러난다면, 좋은 일이다. 제 문제를 다루지 못하면서 자신이 세상의 꽃이라고 칭송하는 언어는 괴물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들이 ‘#metoo’의 방식으로 직접 나섰고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언제나 할 말을 한다는 문학과 연극, 검찰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피해자가 나섰으니, 사회에서 부패를 조금이라도 드러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하다. 피해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가까이에서 비슷한 사건을 직접 경험한 다수가 뒤에서 밀어주고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수가 분노하기 때문에, 기득권을 내세운 성추행ㆍ성폭력과 갑질은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추악한 짓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다행스런 분노 뒤에, 유감스런 면이 있다. 성추행 고발이 없었으면, “그가 정말 한국의 대표 작가인가”라는 이의도 제기되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은 자신이 기능장애에 빠진 것도 모른 채, 아직도 허우적거릴 것이다. 또 다른 여성 작가들이 “나도!”를 외치며 나서지 않는 상황도 뭔가 이상하다. 근본적으로는, 피해자의 외침에 너무 의존하는 것도 무력한 일일 수 있다. 피해자는 사실 현장에서 직접 앞으로 나서기 힘들다.

다수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여러 추악함은 아직도 잘 드러나지 않고, 권력형 부패에서 드러나는 건 부스러기뿐인 듯하다. 한편엔 악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있고 다른 편엔 피해자의 지연된 외침이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린 현재의 악을 어쩌지 못하며, 멍하게 보고만 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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