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아픔에 ‘어떨 것이다’ 단정하며 퉁치지 마세요”

입력
2018.01.24 16:3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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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삶 대신 사회역학 연구

“소수자 목소리 들려주는 일이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으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을 수상한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22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배움홀에서 열린 수상작 릴레이 북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으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을 수상한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22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배움홀에서 열린 수상작 릴레이 북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자주 받는 질문이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느냐’인데요. 제가 엄청나게 숭고하고 자기 희생적인,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대학의 정규직 교수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웃음) 다만 살아오면서 작은 선택의 문들을 만났고, 그 때마다 했던 조금 다른 선택이 쌓여 오늘의 제가 됐다는 정도의 말씀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선택을 깊이 이해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배움홀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 콘서트 자리에 선 김승섭(39) 고려대 교수의 어투는 담담했다.

2017년은 ‘김승섭의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사태는 물론, 반도체 노동자, 성소수자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응결되어 있는 곳을 사회역학의 눈으로 풀어낸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을 출간했다. 이 책에 바쳐진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2017년 최대 수확”이라는 격찬 속에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거의 모든 언론이 ‘김승섭’과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올해의 저자,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당연히 관심은 그의 이력에 쏠렸다. 의대 갔으니 의사로 돈도 많이 벌면서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은 사회역학을 굳이 왜. 강연 뒤 청중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잘 살고 싶었다”고 답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잘’은 남들과 다른 ‘잘’이다. 그는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 대신 하버드대에서 사회역학 공부를 택했다. 그는 “원래 책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데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아한다”며 “대학 안의 어떤 연구자가 나처럼 파업노동자, 성소수자,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감염자들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들려주는 것, 그게 김 교수 입장에서 “인생 잘 사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며 생길 스트레스 조절은 어떻게 할까.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사회역학 조사 때 김 교수는 아무 맥락 없이 시시때때로 목 놓아 울었다. 스스로도 “그 때 아내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까지 무너질 수 없다며 이를 꽉 깨문다. “비장한 각오로 운동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기르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어요.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있는 그 분들 앞에서 제가 힘들다 할 수는 없지요.”

김 교수는 아픔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걸로 ‘퉁치지 말라’는 점을 꼽았다. 으레 그럴 것이다라고 단정지어선 안 된다. 가령 세월호 참사 때 생존학생들이 당황했던 것 중 하나가 심리치료해주겠다며 8주짜리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다. 뜻은 좋았을 지 몰랐지만, 생존학생 그 어느 누구도 그런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김 교수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보면 시공간을 초월해 적용되는 진리란 바보 같은 생각이란 얘기가 나온다”면서 “피해자니까 당연히 그런 것 아니냐 하지 말고 당사자 입장에서 천천히 세세히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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