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선업 지원보다 구조조정 먼저

입력
2018.01.03 18:1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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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은 물 건너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대우조선해양을 찾은 것을 보며 조선업계 관계자가 안타까워하며 보인 반응이다. 2015년 2조원대 분식회계가 드러난 이후 좀처럼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대우조선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절실한 데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 격려했으니, 채권단이 청와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선소에서 “이 힘든 시기만 잘 이겨낸다면 다시 조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LNG 연료선 중심으로 일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정부는 일감절벽에 허덕이는 국내 조선산업의 활로를 러시아 LNG 개발사업에서 찾으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야말반도 인근에 묻혀 있는 LNG를 개발하는 야말프로젝트가 그 핵심이다. 대규모 LNG 개발에 따른 운반선 수요 증가가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둘러본 야말 5호도 러시아가 2014년 야말프로젝트에 투입하기 위해 대우조선에 발주한 쇄빙LNG운반선 15척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가 최근 자체 선박 건조를 목표로 추진 중인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 사업도 국내 조선사에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국내 조선소 과잉 설비를 러시아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조선 업계에선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조선업계가 회생할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세금으로 연명하는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도 지난해 “대우조선을 작지만 단단한 회사로 만든 다음 새 주인을 만나 빅2 체제로 가는 게 국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궁극적으로 올바른 길”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조직원들 사이에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꼭 필요하다. 문 대통령의 조선소 방문이 행여 “대우조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리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시적 지원으로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건 조선산업 전체에 독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조선업 혁신성장 방안’을 1분기 중 마련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얼마나 냉철하고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내놓을지 조선산업 전체가 지켜보고 있다.

고경석 산업부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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