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개는 가족이고 라쿤은 모자에 달린 털인가

입력
2017.12.01 16:00
14면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퍼(Inside Fur)’는 노르웨이의 한 모피 농장에 잠입해 여우와 밍크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 준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퍼(Inside Fur)’는 노르웨이의 한 모피 농장에 잠입해 여우와 밍크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 준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노르웨이 모피농장 잠입 다큐

밍크·여우를 좁은 공간에서 사육

같은 종족 살육에 이상 행동도

‘인사이드 퍼(Inside Fu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노르웨이의 한 모피 농장을 보여 준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철조망을 두른 공장식 농장. 누구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 동물 보호를 위한 운동가들이 잠입한다. 어두컴컴한 농장으로 들어간 그들의 카메라에 여우와 밍크의 참상이 기록된다. 귀가 찢어지고 신체 일부를 물어뜯긴 밍크, 정신이상 행동을 보이는 여우. 영상은 언론에 공개돼 여론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모피업계는 ‘이것은 일부 소수의 악덕 농장’이라고 주장했다.

심리학자 프랭크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좀 더 깊숙이 농장을 조사한다. 카메라를 몰래 들고 모피농장에 위장 취업한 프랭크는 그동안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농장의 운영 방식을 낱낱이 보게 된다.

밍크농장에서 카니발리즘, 즉 같은 종끼리 서로 잡아먹는 행위가 일어난다. 원인은 밍크의 습성을 무시한 사육에 있다. 야생 밍크는 많은 시간을 물에서 지낸다. 물갈퀴가 있는 발을 보면 밍크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야생 밍크는 몇 ㎢의 넓은 영역에서 홀로 생활한다. 그런데 농장에서는 쇼핑 카트보다 작은 우리에 여러 마리의 밍크를 넣어 놓는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밍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동료를 공격하는 일뿐이다.

농장의 잔혹한 현실이 드러나면서 정부는 농장 관리 기준을 강화한다. 농장주들이 동물복지 수업과 안락사 수업을 받도록 하고 농장의 복지 기준도 만들었다. 그러나 농장에서 관리 기준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지정된 수의사들이 현장 감시를 하지만 불시 시찰이 아니라 미리 방문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에 농장주들은 다치거나 죽은 동물을 치워 단속을 피한다. 프랭크의 몰래 카메라에 찍힌 날 것 그대로의 모피농장은 농장에서 동물복지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보여준다.

심리학자 프랭크는 노르웨이의 한 모피농장에 위장 취업해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농장을 영상으로 파헤쳤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심리학자 프랭크는 노르웨이의 한 모피농장에 위장 취업해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농장을 영상으로 파헤쳤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고가 브랜드 아르마니, 랄프 로렌, 스텔라 매카트니에 이어 구찌가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퍼 프리(Fur Free)’ 선언을 했다. 미국, 브라질, 마케도니아에서 모피 반대 입법 활동이 활발하고 영국과 북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네덜란드 등은 이미 모피 생산을 금지했다. 유럽에서 문 닫은 모피농장들이 중국으로 이전해 성업 중이다. 한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의 모피 소비국이다. 밍크 코트뿐 아니라 재킷의 모자, 목도리, 장갑, 열쇠고리 등에 라쿤, 여우, 토끼의 털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노르웨이의 한 모피농장 속 밍크와 여우는 귀가 찢어지고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는 등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노르웨이의 한 모피농장 속 밍크와 여우는 귀가 찢어지고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는 등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퍼 홈페이지 (www.insidefur.com)

‘인사이드 퍼’에서 프랭크는 동물의 고통에 무감한 농장주들을 보면서 개개인의 잔인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잔인함과 정치인들의 방관에 분노한다. 영화 마지막에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누구나 동물을 잘 대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용납하는 잔인함은 어디까지인가?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까?’

개는 가족이고 라쿤은 모자에 달린 털인가? 고양이를 때리는 것은 학대이고 모피농장에서 여우를 잔인하게 도살하는 것은 괜찮은가? 기러기는 보호 야생동물이고 거위는 산 채로 털을 뜯겨도 좋은 재킷 충전재인가?

황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감독

▶다큐멘터리영화 <인사이드 퍼> 홈페이지에 가면 단체, 학교, 모임 등에서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방법이 자세히 안내돼 있다.

▶ 당신의 겨울외투 알파카와 라쿤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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