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의 프레임] 공간으로 시간을 사다

입력
2017.09.07 13:3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인간의 땀과 눈물로, 자연의 섭리와 선물로, 때로는 신의 은총으로 구해야 한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돈으로 사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물질 만능도 경계해야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인내로 견디려는 우직함도 마냥 칭송 받을 일만은 아니다.

좋은 물건이 나왔다며 각종 상품, 주식, 땅, 아파트를 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좋은 물건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더 넘쳐난다.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이면서 동시에 소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돈으로 사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사야 한다. 부의 증가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크게 늘려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자원 하나를 고갈시켰다. 바로 시간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경이로운 수준으로 증가해왔다. 한마디로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물건들이 증가한 만큼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시간이 너무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바쁘시죠?”라는 말이 습관적 인사가 되었고, “시간이 없다”는 말은 게으름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변명이 되었다.

시간은 돈과 달리 본질상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버드대의 연구나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는 여행, 운동, 수다, 걷기, 먹기, 명상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비록 부유해졌을지는 몰라도 정작 행복을 가져오는 이런 활동에 보내는 시간은 빈곤해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관계적 자원인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대신에 회사 동료와 거래처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으며, 출퇴근 시간의 증가로 인해 지하철과 버스에서 낯선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결국 부의 증가는 행복을 살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대폭 늘려주었지만, 동시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결핍을 가져왔다. 이것이 부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잘 연결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

가급적 돈으로 시간을 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유쾌하지도 않고 의미도 느낄 수 없는 일들은 아웃소싱해야 한다. 한마디로 ‘비서’를 두는 것이다. 여기서 비서란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나 부자들만이 채용하는 특정 직업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나 서비스 전체를 뜻한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최근 하버드 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을 벌어주는 데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소득 수준과 상관이 없었다. 다시 말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다르지 않았고, 소득 수준이 같은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기 위해서 시간을 벌어주는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더 누린다는 것이다. 알뜰하게 사는 것은 소중한 미덕이다. 그러나 알뜰하게 사는 것과 함께 시간의 결핍에서 해방되는 삶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돈으로 공간을 사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빈곤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시간의 효율을 늘리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집에서 공부할 때보다 공부가 잘된다. 따라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은 시간을 버는 일이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면, 특히 코치의 도움까지 받게 되면 운동의 효과가 배가 된다. 혼자서 학교 운동장을 뛰는 것보다 시간을 버는 셈이다.

집중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시간을 버는 일이다. TV를 켜놓은 거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서재나 조용한 방에서 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동네 카페에서 읽기에 몰입하는 것도 좋다. 이렇듯 시간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면, 삶의 공간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특히나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이 없다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것은 결국 돈으로 자율성을 산다는 뜻이다. 연구에 따르면, 일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매우 낮다. 이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와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일할 때도 느낀다고 한다. 그 반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동안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을 경험한다고 한다.

자율성! 우리 영혼의 가장 중요한 영양소이면서 돈으로 사야 할 궁극의 자원이다. 시간을 들여 돈을 벌고 공간을 사서 부를 늘리는 프레임만 가질 것이 아니라, 돈으로 시간과 공간을 사는 행복 프레임도 가질 필요가 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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