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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22) 미국 걸스카우트, ‘자녀 외모고민 대처법’ 만들다

그림 1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지난 3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세워진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 동상(오른쪽)이 황소 동상을 향해 어깨를 활짝 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다른 애들보다 내 허벅지가 더 굵다고요” 볼멘소리를 하던 열 살배기 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자 윤수진(39)씨는 깜짝 놀랐다. 밥을 굶고 다이어트에 들어간 딸에게 “밥을 안 먹으면 키도 안 큰다”고 했던 훈계에 돌아온 반응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결국 윤씨는 고민 끝에 “우리 딸은 안 뚱뚱해, 이미 충분히 예쁘다”며 딸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훈계 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미국 걸스카우트가 최근 발표한 ‘스스로 뚱뚱하다고 말하는 딸과 대화하는 법(Yes, Your Daughter Just Called Herself Fat)에 따르면 윤씨의 노력은 헛수고일 가능성이 높다. “넌 예뻐”란 말을 아무리 전해도, 이미 스스로 ‘뚱뚱하다’고 믿는 아이에겐 공염불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게다가 ‘안 뚱뚱해’란 말은 ‘살찐 건 나쁘다’는 고정관념만 강화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윤씨 같은 상황에 처한 부모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걸스카우트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레드카펫 바깥의 아름다움을 알려줘라

우리 주변에선 잘록한 허리의 여배우, 막대기처럼 가는 팔뚝과 다리를 가진 걸그룹을 쉽게 접한다. 다이어트 제품 광고는 ‘자신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늘 ‘S라인’ 몸매의 미인만을 제시한다. 아이들이 늘 이런 이미지만을 보는 현실에서 자신의 몸을 검열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무작정 TV를 못 보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걸스카우트는 어린아이들에게 다양한 이미지의 아름다운 여성을 역할모델로 제시하라고 말한다. 즉, 날씬함뿐 아니라 뚱뚱함, 똑똑함, 강함 등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선 연예인들 외에도 여성 과학자, 축구선수, 음악가 등 다양한 재능과 외모를 지닌 사람이 당신의 딸의 우상이 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자기 몸 긍정주의(The Body Positivity Movement)’와 그 모델들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 '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본부가 운영하는 '디스이즈뷰티' 사이트 메인 화면에 다양한 인종과 몸매를 가진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와있다. 디스이즈뷰티(thisisbeauty.org) 홈페이지 캡쳐.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와 몸에 대한 이야기는 피한다. 그것이 더 적절한 대처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스카우트는 딸과 함께 지속적으로 몸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녀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딸이 자신의 몸 중 어디를 ‘뚱뚱하다’고 느끼는 지 대화하는 것이다. 만약 ‘팔이 뚱뚱한 것 같다’ 라고 생각한다면 함께 팔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팔이 정말 뚱뚱한지 아닌지, 뚱뚱하다고 처음 느낀 것은 언제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나아가 팔에 대한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다만 그 이야기는 ‘팔이 어떻게 보인다’ 가 아니라 ‘팔로 무엇을 할 수 있다’가 돼야 한다. 딸이 신체부위의 모습만이 아닌 능력에 초점을 두고 이를 계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팔이 튼튼해서 철봉을 더 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당신 스스로를 반성하라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걸스카우트는 “딸들은 그저 당신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딸은 부모, 특히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다. 때문에 엄마가 스스로 ‘살 빼야 돼’, ‘피부가 왜 이렇게 나쁘지’라며 스스로의 외모에 불평을 한다면 딸 역시 이를 따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바깥으로 티 내지 않았다고 방심해서도 안 된다. 딸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 딸에게 ‘네 스스로를 사랑하라’라는 말을 건네기 전에, 본인 스스로 자신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게 효과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존감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생존 위한 슬픈 가이드

걸스카우트 가이드가 만들어진 계기는 미국 여자아이들의 외모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통계 때문이다. 가이드를 만든 걸스카우트의 발달심리학자 안드레아 아치발드 박사는 “미국 10살 여자아이 10명 중 8명이 ‘살찌는 것이 두렵다’고 응답한 통계를 보고 몸에 대한 어린아이들의 이미지가 심각한 수준으로 왜곡됐다는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에서도 유사하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798개교를 대상으로 시행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중학교에 재학중인 여학생 중 42%가 체중감소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또한 여학생 중 33.4%가 자신이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살이 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치발드 박사는 “대중문화가 살찌는 것을 비판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반복해서 보여주길 그만두지 않으면 아이들의 자존감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고 말한다. 미디어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미국 걸스카우트의 가이드도 임시대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끊임없는 노력은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딸을 위한 ‘백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치발드 박사는 “‘모든 몸이 아름답다’는 가르침이야말로 여러분의 딸이 가혹한 외모 잣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이다”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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