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포르투갈전 눈물, 기회로 승화시키려면”

입력
2017.06.05 04:40
구독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 앞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 앞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4일 오전 11시30분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신태용(47) 전 20세 이하(U-20) 대표팀 감독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대전에서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U-20 월드컵 8강이 열렸다. 한국이 지난 달 30일 16강에서 포르투갈을 눌렀다면 신 감독은 한창 결전을 준비 중이었을 거다. 잠시 시계를 보던 그는 “(우리가 8강을 치른다면) 지금은 이른 점심을 먹고 선수들과 마지막 비디오미팅을 할 시간”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포르투갈에 1-3으로 진 뒤 ‘4-4-2 포메이션이 너무 공격적인 게 패착이었다’는 지적과 ‘어쩔 수 없는 실력 차가 확연했다’는 분석이 동시에 나왔다. 신 감독은 둘 다 인정했다.

“포르투갈을 이길 유일한 방법을 4-4-2라 봤다. 상대 중앙 수비 두 명을 조영욱(19ㆍ고려대)과 하승운(19ㆍ연세대)이 협공하고 공격 가담이 좋은 양쪽 풀백을 이승우(19ㆍ바르셀로나후베닐A)와 백승호(20ㆍ바르셀로나B)가 앞에서부터 저지하려 했다. 전반에 포르투갈이 제 실력 발휘를 못 하게 막으면 우리보다 하루 덜 쉬었으니 후반에 체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반에 상대가 두 번 공격해서 두 골을 넣었으니....”

지난 달 30일 포르투갈과 U-20 월드컵 16강에서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천안=연합뉴스
지난 달 30일 포르투갈과 U-20 월드컵 16강에서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천안=연합뉴스

포르투갈에 진 뒤 새벽 내내 경기를 복기했다는 그는 “후회하는 게 있다. 포메이션의 문제는 아니다”며 “초반부터 상대 진영에서 적극 압박하라고 주문했는데 전반에는 우리 지역에서 압박하며 조금 지켜봤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돌아봤다. 잉글랜드와 조별리그 3차전 선택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니와 아르헨티나를 연파하며 16강을 확정한 뒤 신 감독은 잉글랜드전에 이승우, 백승호를 선발에서 모두 뺐다. 결국 잉글랜드에 0-1로 져 2위로 밀리며 포르투갈과 맞닥뜨렸다. 만약 1위를 했으면 16강에서 코스타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이승우, 백승호를 다 선발로 넣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둘이 있으면 확실히 무승부 이상 한다는 보장이 있나? 밖에서는 얼마든 결과를 보고 비판할 수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감독 숙명이다. 하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따져봤을 때 잉글랜드전 선택이 틀렸다고 보진 않는다.”

대회 개막 직전 백승호는 왼 발목 부상을 당했다. 아르헨티나와 2차전 뒤 같은 부위에 또 통증을 느꼈다. 신 감독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아르헨티나전 다음 날 회복 훈련 때 백승호가 조깅은 가능하다는 의무 팀 보고를 받고 초반 15분 공개 훈련에서는 다른 선수와 똑같이 가볍게 달리도록 했다. 기자들이 모두 나간 뒤에야 휴식을 줬다. 신 감독은 “승호는 2~3년 게임을 못 뛰어 체력과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본인이 독하게 노력해서 몸을 많이 끌어 올렸는데 부상 때문에 한 번 꺾였다”며 “승호에게 한 달만 더 주어졌다면 완전히 다른 기량을 보였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포르투갈에 패한 뒤 이승우(오른쪽)를 위로하는 신태용 감독. 천안=연합뉴스
포르투갈에 패한 뒤 이승우(오른쪽)를 위로하는 신태용 감독. 천안=연합뉴스

이승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연령별 대표팀 감독들은 실력만큼 개성이 강한 이승우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신 감독은 달랐다. 둘은 대회 내내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냈다. 신 감독은 실례를 소개했다.

“감독이 말할 때 승우는 약간 ‘삐딱’하게 서 있다. ‘건들건들’하는 것 같아 ‘건방지다’고 지적하면 관계가 탁 끊긴다. 알고 보면 감독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원래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걸 이해하면 문제 삼을 게 없다. 누구보다 활발하고 분위기 띄우는 게 승우다. 위화감 조성? 그런 적 한 번도 없다.”

신 감독은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 “비디오미팅 때 승우 자세를 본 받아라”라고 했다. 비디오미팅에 들어가니 이승우를 뺀 전원이 ‘정자세’로 ‘각을 잡고’ 있더라는 것. 신 감독은 “너희 그게 편하냐. 운동하고 와서 뻐근한데 왜 불편하게 있냐. 눈치 보지 말아라. 의자 가지고 와서 발 올리고 등받이에 맘껏 기대라”고 주문했다. 그는 “선수들이 처음에는 ‘감독이 언론에만 선수를 편하게 해 준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강하게 쥐어짤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 않자 신뢰가 조금씩 쌓였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해 짧은 기간 ‘원 팀’이라 불릴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던 건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고 엷게 웃었다.

신 감독이 가장 땅을 치는 건 한국의 도전이 16강에서 멈췄다는 게 아니다. 대회 내내 선수들이 제 기량의 70% 밖에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대학 선수건 프로 선수건 소속 팀에서 게임을 뛰는 선수가 없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 경기에만 들어가면 주눅 든다. 볼을 자꾸 수비적으로 돌려놓고 패스도 안정적으로만 하려다가 실수한다. 뻔히 정답을 아는 문제를 수능에서 틀리고 시험 끝난 뒤 머리를 쥐어뜯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신 감독은 “물론 이는 대한축구협회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구조적인 문제”라면서도 “포르투갈에 진 뒤 선수들이 많이 울더라. 눈물에 그치지 말고 나중에 또 다른 기회로 승화시키려면 선수들 각자도 어떻게든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