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썩은 뻘은 안 없어질텐데…” “농민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입력
2017.06.01 17:11

수문 열고 일제히 물 방류

일부 주민들은 환성 지르기도

환경단체 “4대강 해결 신호탄

퇴적물 제거 위해 전면 개방해야”

농민들 “가뭄에 농사 망칠까 걱정

가을에 수문 여는게 좋겠다”

정부가 4대강 16개 보 중 6개 보 수문을 개방한 1일 대구 달성군 낙동강 강정고령보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흘러라 4대강’ 등 수문 개방을 환영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정부가 4대강 16개 보 중 6개 보 수문을 개방한 1일 대구 달성군 낙동강 강정고령보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흘러라 4대강’ 등 수문 개방을 환영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물 내려가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저렇게 조금씩 내려 보내면 바닥의 썩은 뻘은 그대로 있을 텐데…”

1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금강 공주보 교량. 교각에 설치되어 있는 봉황모양의 6개 분수대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자 보 아래 수문 개방을 지켜보던 주민 140여명이 환성을 질렀다. 이날 수문 개방은 부여군 백제보 금강통합물관리센터에서 원격으로 이뤄졌으며 길이 14m 높이 1m의 수문 6개 가운데 지주식 1, 3, 5번이 열렸다.

60도 각도로 서있는 지주식 수문이 조금씩 눕혀지자 방류량이 늘고 규조류 영향으로 짙은 갈색으로 변한 강물이 포말을 만들어 내면서 아래로 흘러갔고, 물줄기가 커지자 바닥의 물이 섞여서 인지 악취도 풍겼다.

정부가 1일 전국 4대강 6개 보를 일제히 개방했다. 금강 공주보를 비롯, 낙동강 강정고령보ㆍ달성보ㆍ합천창녕보ㆍ창녕함안보, 영산강 죽산보 등 총 6개 보가 이날부터 상시 개방체제에 들어갔다. 환경단체들은 녹조라테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개방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농번기에 물 부족 현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농민들의 우려도 있었다.

같은 시간 전국 4대강 보 중에서 가장 많은 물을 방류하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낙동강 강정고령보도 3개의 수문 중 2개가 열리고 초당 90톤의 물이 방류하기 시작했다. 수위 19.5m에 9,230만톤의 물을 담고 있는 강정고령보가 1,940만톤을 방류, 수위를 18.25m까지 1.25m를 낮추는 데는 3일 정도 걸릴 전망이다.

낙동강 경남지역 창녕함안보와 합천창녕보도 수문을 개방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합천창녕보의 수위는 10.5m에서 9.5m로, 창녕함안보는 5m에서 4.8m로 각각 낮출 계획이다.

전남 나주시 영산강 죽산보도 이날 4개 수문 중 2개를 열었다. 수문이 40㎝ 높이로 들어 올려 지자 수문 아래로 닫힌 물이 쏟아지며 영산강 본류로 합류했다.

이날 수문 개방에 맞춰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4대강 보 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주장이 이어졌다.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이날 강정고령보에서 ‘흘러라 4대강’ ‘4대강 사업 적폐청산’ 등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녹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를 상시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동강경남네트워크 등 환경단체 회원 40여명은 보 개방에 앞서 이날 오후 1시부터 보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에서 ‘강은 흘러야 한다’, ‘4대강 적폐청산, 흘러야 강이다’ 등 플래카드를 들고 수문개방 환영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사무처장은 “이날 수문개방은 4대강 사업의 문제를 본격 해결하는 신호탄”이라며 “수문 개방으로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줘서는 안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물속 퇴적물에 대한 해결에는 미흡해 수문 개방을 확대하고 최종적으로 철거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 주변 농민들은 수문 개방으로 인한 농업용수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공주보에서 7㎞ 떨어진 상류의 세종보 사이에는 원봉, 장기1, 소학, 세종천연가스발전소 등 4곳의 양수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양수장은 공주시와 세종시 농경지 585ha에 금강에서 퍼 올린 물을 공급하고 있다.

소학양수장 주변 농민 김모(78)씨는 “금강보 설치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었는데 그냥 흘려 보내는 물이 아깝다”며 “지금 물을 빼고 난 뒤 가뭄이 계속되면 농사짓기 어려울 수 있어 가을에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면 이모(63)씨도 “6월 중순까지 모내기를 하는데, 물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모내기가 힘들어져 올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반면 수자원공사는 양수장 취수구가 낮게 설치되어 있어 양수장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원봉리 양수장은 취수구가 8.5m 높이로 설치되어 있어 공주보 수위가 8.5m 밑으로 내려가면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다. 세종천연가스발전소 양수장도 같은 높이로 세종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 운영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강정보 인근 주민 강보근(70)씨는 “물난리가 날 때마다 마을회관 고무보트를 타고 피신했으나 보가 생긴 후 가뭄과 홍수 걱정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며 “녹조 때문에 물을 빼버리면 농사는 어떻게 지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칠곡에서 온 60대 농민도 “낙동강을 따라 농사를 짓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농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보 수문을 개방하는 탁상행정이 어디 있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관 계명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보 수문 개방으로 녹조현상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근원적인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공주=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창녕=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대구=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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