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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그들의 쉼터는 승강장, 화장실, 쓰레기 분류장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승강장에 설치된 부스에서 청소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끊임없이 오고 가는 전동차와 승객들, 광고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탁한 공기가 부스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부스 내에서 쉬고 있는 청소노동자와 무심히 지나치는 승객들의 모습을 다중촬영 했다.
막간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교대로 식사를 하는 시간엔 이마저도 사치다.
휴게 부스 옆에 청소도구가 놓여 있다.
하루 동안 청소해야 하는 전동차 수가 부스 내벽에 붙어 있다. 평일보다 토요일과 공휴일에 처리해야 할 차량이 더 많다. 출근시간 대 극심한 혼잡을 빚는 평일 오전 7시에서 9시에는 청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틈새로 기관사에게 전동차 탑승 직원의 명단을 전달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지하철 승강장에서 먹고 쉬고 자고

지난달 26일 오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승강장의 맨 끝 지점, 청소노동자 김모(58)씨와 임모(60)씨가 낡은 철재 부스 안에 걸터앉아 있다. 주변 시설과 어울리지 않게 작고 초라한 부스는 이들에겐 유일한 휴식처, 그러나 승강장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한기, 소음과 미세먼지를 막아내기엔 터무니 없이 비좁고 허술하다. 공기정화장치가 없어 문을 항상 열어두다 보니 승객들의 시선과 요란한 안내방송마저 휴식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승강장으로 진입하고 빠져나가는 전동차의 진동도 그대로 온몸으로 전해진다. 잠시 후 청소도구를 손에 든 황모(61)씨가 전동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스 앞 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스가 비좁은 탓에 3~4명이 동시에 휴식을 취할 땐 부스 대신 간이 의자를 이용해야 한다.

홍대입구~문래 구간을 하루 30여차례씩 이동하며 전동차 내부를 청소하는 16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이 공간에서 5~10분간 번갈아 휴식을 취한다. 문래역에도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이 14명 더 있다. 업무공간이 전동차 내부인데다 휴식공간마저 승강장에 있다 보니 신선한 공기는 퇴근 전까지 꿈도 못 꾼다. “일 마치고 나면 목이 칼칼하고 콧속은 시커멓게 변해 있다.” 휴식을 마친 김씨가 청소도구를 챙기며 말했다. 동료 임씨는 “공기정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침 가래를 달고 사는데 회사에서는 제대로 된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미세먼지 섞인 탁한 공기보다 한여름 더위와 싸울 일이 더 걱정이다. 스크린도어로 막힌 승강장 구조상 전동차와 승객, 광고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빠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황씨는 “냉방시설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땀이 멈추지 않을 정도다. 여기는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차라리 전동차 안에서 일할 때가 더 낫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31일 휴게 부스 앞에서 측정한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나쁨’ 단계인 42㎍/㎡로 나타나고 있다. 이날 서울지역 초미세먼지 농도는 25㎍/㎡ 이하로 WHO기준 ‘보통’ 수준을 나타냈다.
승강장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밑에 있는 숙소는 외부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하철 운행이 종료된 뒤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냉난방,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기온과 습도 조절이 불가능하다.

휴게실에서 약 70m 떨어진 승강장 내 숙직실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동차 운행이 중단되는 새벽 1시부터 4시30분까지 4명이 함께 잠을 청하는 숙직실은 승강장 계단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비좁은 공간에 공기정화시설도 없고 냉방장치라고는 선풍기 한 대뿐이다. 출입문 바로 앞 스크린도어 광고판 교체나 시설 보수로 발생하는 소음도 견디기 힘들다. 김씨는 “밤에 작업 인부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제발 계단 밑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사정은 알고 있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공간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장실이 곧 일터이자 쉼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김모(62)씨에게 화장실은 일터이자 쉼터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다용도실은 지난해 정부기관이 입주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건물 지하에 청소 노동자를 위한 휴식공간이 있지만 업무시간 중엔 담당 층에서 대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용이 불가능하다. 별도의 휴게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청소도구를 세워 두고 걸레를 빨아 넌 화장실 구석에 옷, 신발, 음료 등 개인물품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조화와 관상식물로 꾸민 화장실 창가에 앉아 틈틈이 휴식을 취하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직원이 들어오면 자리를 피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화장실에서 쉬다가 직원이나 방문객이 들어오면 얼른 자리를 피하는데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따로 앉아 쉴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김모씨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개인 휴식공간이 없어 작업할 때 입는 옷과 신발을 화장실 한 켠에 보관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26일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쓰레기 더미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쓰레기 더미와 함께 휴식을

동대문구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들도 별도의 휴식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작업실’ 이 휴게실이며 쓰레기더미 옆이 곧 쉼터다. 사계절 내내 이들을 괴롭히는 악취 외에도 냉난방시설이 없으니 여름엔 폭염, 겨울엔 추위와 싸워야 한다. 김모(55)씨는 “건물 내부에 공동 휴게실이 있지만 옷에 밴 악취 때문에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한다. 그저 개 돼지보다 조금 나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민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직차장은 “원청업체나 기관이 청소노동자를 자기 식구라 생각한다면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어느 영역에서든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식공간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환경미화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국민의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에 기여하고 있지만 사회 경제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낮은 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하철 청소노동자들. 마스크는 자비로 구입했다.
열차 곳곳에 뿌려지는 불법 광고물은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꺼리는 대상 중 하나다.
플라스틱 의자에 완충제를 테이프로 붙여 만든 간이 의자의 모습이 애처롭다.
화장실 구석이 유일한 쉼터인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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