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예술을 할 테니 돈을 주세요

입력
2017.03.03 15:46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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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라는 말에 넌더리를 내는 창작자들이 숱하다. ‘열정페이’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 화가 치미는 청년들도 많을 것이다. 의도가 좋은 일에는 재료비 안 드는 창작물쯤은 기꺼이 내놓고, 젊으니 싼값에 열정을 쏟아 부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으라니 그것 참 희한한 폭력이다. 가수 이랑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쳐 50만원을 벌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상업논리로 변질된 여타 시상식과는 달리 음악성만을 두고 심사를 하는 몇 안 되는 시상식이다. 몇 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까지 끊겼으니, 한 마디로 취지가 아름다우나 가난한 시상식이다. 그의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가 벌어진 이후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옹호 의견과 그의 무례함을 비난하는 의견들로 SNS가 후끈해졌다. 선정위원들에서도 시상식의 취지에 동의해 돈 한 푼 받지 않고 참여하는데 수상자가 상금 운운했다는 사실이 모욕적으로 느껴진 이가 있는 모양이다. 취지가 아름다워 재능을 기부하고 열정을 갖다 바치는 일을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주 잔소리를 했다. 후배들에게도 그랬다. 절대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이다. 가난이 창작의 기회를 앗아갈 것이고 창작을 더디게 만들 것이고 머리와 가슴을 곰팡이 슬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것은 힘든 일이어서 여태 못 받은 원고료가 쌓여 있고 1년에 한 번쯤 전화를 걸어와 미안하다 사과하는 관계자에게 “뭘요, 사정 다 아는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알고는 있다. 돈을 달라고 한다고 창작물이 경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챙기려는 것이, 정말 도둑놈 심보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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