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형 구제역에 바닥 난 백신… 가축시장 폐쇄

입력
2017.02.09 18:01
구독

경보 최고단계 ‘심각’ 격상

9일 대전 중구 정생동 축산농가에서 박용갑 중구청장이 구제역 예방백신을 맞는 소들을 지켜보고 있다. 대전 중구청 제공
9일 대전 중구 정생동 축산농가에서 박용갑 중구청장이 구제역 예방백신을 맞는 소들을 지켜보고 있다. 대전 중구청 제공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구제역의 바이러스 유형이 충북 보은군과 전북 정읍시의 ‘O형’과는 다른 신종 ‘A형’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그 동안 O형만 상정한 채 진행돼온 전국 일제 백신 접종엔 제동이 걸렸다. 두 유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백신은 양이 모자라 긴급 수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입한 백신을 접종해 항체가 형성되길 기다리는 수주일 동안 전국의 축산 농가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처지다. 방역에 실패한 정부는 초반부터 통제불능 상황이 이어지자 7년 만에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시켰다. 18일까지 전국의 가축시장도 폐쇄된다.

9일 농림축산식품부 등 방역당국에 따르면 전날 연천군 젖소 농가에서 검출된 구제역 바이러스는 A형으로 확인됐다. 국내 A형 바이러스는 2010년 1월 경기 포천시ㆍ연천군에서 딱 한 차례 발생한 적이 있다. 나머지 7차례의 구제역 바이러스 유형은 모두 O형이었다. 구제역 바이러스에는 O, A, C, 아시아1, SAT1, SAT2, SAT3 등 7개 유형이 있는데, 유형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백신의 종류도 달라진다.

두 가지 종류의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전국 백신 접종을 통해 조기에 구제역을 잡으려 했던 정부의 대응도 사실상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O형과 A형에 함께 대응하려면 ‘O+A형’ 백신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대부분 O형이어서 정부가 보유한 백신도 주로 O형 백신이다. 영국에서 수입한 O+A형 백신 보유물량은 190만개 정도로 이날 현재 접종 대상인 전국 소 283만마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연천군 바이러스는 지역형도 아직 확인되지 않아 이 O+A형이 효과를 발휘할 지도 미지수다. 김경규 식품안전정책실장은 “유전자 검사 결과 국내에서 사용 중인 백신으로 A형 바이러스 방어가 안 되면 방역 대책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대량 살처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일단 백신 물량과 구제역 유형을 감안해 지역별로 다른 백신을 투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방역 당국은 ▦소 193만마리에는 O형 백신을 우선 접종하고 ▦A형 유전자 분석시까지 90만마리에는 O+A형 접종을 보류하는 대신 ▦연천군 및 관련 지역에만 긴급성을 감안해 O+A형을 우선 접종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부 지방에 A형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어 이러한 처방이 효과를 발휘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백신물량 확보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데에 있다. O+A형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에 백신 공급을 의뢰했지만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린다. 여기에 O+A형을 수입해 접종을 하더라도 항체가 형성되는 기간(1~2주)이 추가로 필요하다. 결국 최대 3주까지 전국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다.

방역당국이 A형 바이러스 대응을 사실상 처음 해본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2010년 A형 구제역이 발생하긴 했지만 당시엔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살처분으로 대응했다. 관련 정보와 경험이 전혀 없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하자 정부는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로 격상했다. 정부는 이날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를 기존의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조정했다.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이 된 것은 2010년 역대 최악의 구제역 사태 이후 7년 만이다.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하면서 정부는 ▦전국 모든 시ㆍ군 및 시ㆍ도간 도로에 거점소독 장소를 설치하고 ▦9~18일 전국 우제류(소 돼지 양 염소 등 발굽이 짝수인 동물) 가축시장을 폐쇄하며 ▦경기 지역에 대해 9~15일 우제류 가축의 타 시도 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독과 이동통제 정도로 구제역을 잡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모든 유형을 다 대비할 수는 없겠지만 인근 국가와 교역 국가에서 발생한 혈청형은 미리 파악해 대비했어야 했다”며 정부의 사전대응 미비를 꼬집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