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며]외국에 우리나라 치부를 숨겨야 하나

입력
2016.12.09 10:51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하다 보니 제일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나라 소개다. 우리나라 문화 언어 사회에 대해 알려 줄 기회가 되니 나도 기쁘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다른 측면이 있듯이 이런 홍보기회에도 함정이 있다. 바로 정직성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을 때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했다. 러시아가 춥고 먼 나라만은 아닌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녹화 전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리고자 애를 많이 썼다. 시간 제한이 있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했지만 한국 시청자 반응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러시아 시청자들에게는 부정적 댓글이 의외로 많았다. 러시아 정치나 경제 이야기를 했을 때 더욱더 그랬다. 러시아 현 대통령에 대한 국내와 국외 평가가 아주 다르다. 러시아 내에서는 칭찬과 호평이 대부분이지만 러시아 밖에서는 비판과 비난이 많다. 양측 입장을 골고루 알리려 했지만, 자기 나라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소개해야지, 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불만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나 안 좋은 이야기나, 어느 쪽 하나에만 기울면 객관성을 잃게 되고 나라 이미지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러시아에 대해 긍정적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에게 러시아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칭찬만 하면 뭔가 진실을 숨기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반대로 비판만 하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어 보인다. 그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이 정말 어렵지만 그것이 나라 이미지 개선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미국에 갔다 왔다. 학업이나 일 때문에 미국에 체류하는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을 만났다. 이야기하다 보니, 그 친구들도 비슷한 딜레마를 느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한국이 심각한 정치 스캔들에 휩쓸려 있는 만큼, 많은 미국들이 민주화 모범국으로 명성이 높은 한국에서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물어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해외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힘든 선택 앞에 서게 된다. 하도 어이없는 상황이라 진실을 말하기보다 에둘러 설명하려니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다. 이미 전세계 매체가 널리 보도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숨길 수도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나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고 숨김없이 진실을 말해야 될까, 아니면 외국인들은 몰라도 되는 세세한 문제는 빼고 큰 그림만 보여줘야 하나.

러시아는 정부 고위급 공무원의 부패나 비리가 심한 나라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를 보면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와 함께 목록 맨 밑에 있다. 얼마 전에도 경제개발부 장관이 뇌물을 받다가 발각된 사건이 러시아에서 큰 이슈가 되었고, 일이 터지자 대통령은 그 장관을 해고했다. 이런 부패나 비리 사건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인 눈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제일 충격적인 것은 현직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 자체가 아니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명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자기 나라 지도자가 범죄자일 것이라는 것은 러시아인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이것에 규탄하며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를 평화적으로 벌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지한 상징이며 놀라운 뉴스다.

러시아에서의 경제 개발부 장관 부패 사건이나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건은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 기회로 봐야 한다. 문제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절반을 이룬 것이란 말이 있듯이, 긍정이나 부정적 측면 모두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나라에 긍정적 도움이 될 것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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