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 산업구조개혁, 사생결단하라

입력
2016.10.02 10:12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이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조선 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을 5대 취약업종으로 정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이어 총선바람이 불면서 올해 4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구조조정 논의는 자취를 감추었다. 올해 6월이 되어서야 정부는 부실이 심각한 조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3대 조선회사가 10조원 규모의 자구 노력을 하고 정부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12조원의 자금 지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별 진전이 없다. 더욱이 청와대 서별관회의 사건으로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암초를 만났다.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부실대출을 결정한 회의내용을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이 밝히자 조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여야의 정치논쟁에 휘말려 힘을 잃었다.

해운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더 문제다. 국내 1위이고 세계 7위 해운업체인 한진해운이 갑자기 법정관리에 들어감에 따라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파괴의 과정을 밟고 있다. 한진해운은 세계경제의 침체에 따른 적자 누적으로 인해 2013년부터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자구 노력을 등한시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부실을 방치했다. 한진해운의 부도 위험이 높아지자 정부는 사재출연 등 강력한 자구 노력을 요구했다. 한진해운 측의 대응이 소극적이자 정부는 지난 8월 31일 전격적으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사전 준비가 없는 탓에 곧바로 세계 곳곳에서 한진해운 소속 선박의 입항을 불허하여 물류대란이 일어났다. 이를 기회로 삼아 해외 대형 해운회사들이 국내 해운회사들의 영업망을 차지하고 운임을 계속 올리고 있다. 아예 국내 해운회사들을 헐값에 인수하겠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주 정부는 철강과 석유화학에 대해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기본적으로 업계 자율로 공급과잉을 줄이라는 내용이다.

우리 경제는 산업구조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주력 산업인 중화학 수출산업이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컴퓨터 등 주요 품목의 수출이 지난해 9.4% 감소한 데 이어 올 들어 다시 10% 이상 감소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수출을 중국이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수출품목에 대한 우리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1년 5.7%에서 2015년 5.3%로 감소했다. 이에 반해 중국의 점유율은 15.2%에서 18.3%로 증가했다. 현 추세로 나갈 경우 우리 경제가 수출산업을 중국에 내주고 추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신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과 해운의 구조조정은 시작하자마자 좌초 상태에 빠지고 여타 산업의 구조조정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주요 산업의 부실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의 책임이 크다. 정부와 채권단이 기업과 유착하여 행한 부정비리와 편법거래가 많다. 정부와 채권단은 기업이 부실화하면 자금을 계속 지원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구조조정을 꾀한다. 더욱이 정부부처 사이에 사후 책임을 두려워하여 구조조정을 서로 미루는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하다. 산업구조개혁의 추진 주체가 없는 셈이다. 이대로 가면 큰일이다. 내년에 경제가 대선정국에 휩싸일 경우 구조개혁이 파국을 맞아 모든 산업을 잃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산업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가 자신은 죽어도 경제는 살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구조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동시에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구조개혁 전담기구를 만들어 정부 스스로 구조개혁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부실 관계자들의 정치적 관여를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 경제논리에 의한 산업구조개혁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혁신적인 산업발전체제를 구축하고 미래경제성장을 선도하는 경제강국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ㆍ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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