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칼럼] 젊은이들의 나라는 불가능한가

입력
2016.09.22 14:44

얼마 전 20대 호주 젊은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필리핀 어머니와 호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그 젊은이는 어린 시절 백인들에게 놀림당한 기억은 있지만, 난독증의 치료비용을 국가가 내주고 대학입학과 공부도 차별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받았다는 점, 부모의 노후도 국가가 보장한다는 점 때문에 호주가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이도 어머니가 정부 돈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재취업할 수 있었다는 점, 정신과 치료를 정부가 대신해 준다는 점,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역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물론 공약을 남발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정치인에 대한 불만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인들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은 확고했다. 그들이 한국인보다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탄탄한 법치제도 때문일 것이다. 호주는 투표하지 않을 경우엔 벌금을 내야 하니 정치인에 대한 관찰의 눈도 예리했다.

반면에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지만,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인사나 법 등 모든 분야에서 전횡을 일삼아 점점 헬조선이 되어 가는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게임이나 앱 인터넷 개발자들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말도 반납한 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지만 청춘을 바쳐 죽으라 일해도 그 수고의 반 정도라도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젊은이들이 풍운의 꿈을 품고 창업하는 스타트업도 이윤을 내기 너무 힘들다. 국가나 큰 회사에서 투자를 받아도 일 년에 한 번씩 재무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복잡한 규정과 제도 때문에 몇 년에 걸친 연구와 개발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인터넷이나 게임은 청소년에게 중독물이란 관점으로만 보는 기성세대의 편견이 여전히 강해, 툭하면 사행산업으로 치부되어 이용이나 투자가 제한되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중독은 게임이나 인터넷이 원인이 아니라 우울하고 고립된 중독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거 일부 소프트웨어 회사가 공명심 때문인지 공짜로 프로그램을 공급한 과거 때문인지, 우리사회에는 소프트웨어 무단 복제에 대한 죄의식도 별로 없다.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공짜로 나누어 주면 개발하는 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 베끼다 같이 망할 뿐이다.

글로벌 시대 유망 수익원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종의 불량식품으로 비하되어 모처럼 만들어진 훌륭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일본이나 미국처럼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저작권이나 예술적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니 그쪽 일을 하는 젊은이들의 노동환경도 열악하다. 긴 시간의 단순작업만 하다 보면 애초에 지니고 있던 재기발랄한 창조성은 퇴화하고 만다.

패션 액세서리 신발 등 디자인 업계도 열악한 노동과 보수로 악명이 높다. 엄청난 돈을 버는 몇몇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준비만 하다 지치는 대중문화계는 또 어떤가. 결국 배 부르는 이는 기업가와 투자자들뿐이다.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역시 자신의 재능으로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한 이들이 거의 없다. 올림픽 기간이 되면 언론의 관심을 받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외롭게 땀을 흘려야 하는 체육계도 다르지 않다. 패럴림픽 선수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후진국에서는 그나마 영웅이라도 되지, 뭘 하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선진국도 아니라 애매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감내해야 할 과정은 혹독하고 보상은 너무 적다.

기초과학이나 인문학 쪽에 종사하는 이들은 더 암울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연구해도 공은 지시하기만 한 교수들이 다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리학 수학 신화 역사 등 기초학문이 게임과 앱 개발 같은 활용 부문과 연결이 되지 않는 채 사장되는 문제점조차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영화처럼 성공하는 영웅들이 없는 건 아니다. 빚만 잔뜩 진 부모 밑에 자라, 강의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도 기업을 만들어 일궈낸 젊은 기업가. 빵 한쪽을 살 때도 돈 때문에 망설이며 외롭게 작업을 계속했지만 결국 성공한 예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소수의 로또 당첨 같은 성공뿐 아니라, 평범한 젊은이들도 나름대로 창조적 삶을 즐길 수 있어야 이 나라가 살 만해진다. 일부 대기업과 특정인들은 천문학적으로 돈을 쌓아 가는데, 정작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돌지 않는 현재 상황은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시스템 국가들과는 너무 다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우리”의 사익을 위해서 부끄러움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기성세대가 먼저 부수고 버리고 바꾸어야 한다. 청년들이 무기력하게 살 수밖에 없어, 장차 모두가 패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 업보는 결국 늙은 기성세대도 지고 가야 할 것이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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